
■ 김형준의 Deep Read - 이재명과 이회창·문재인 모델
李, 높은 호감도에 사법 리스크 없던 ‘문재인 모델’과 거리… 뺄셈정치 계속땐 대선 악영향
與, 다자경쟁하면 유권자 관심 집중… 적대적 공생 ‘윤석열·이재명 동반청산’ 계기될 수도

현재 여야를 통틀어 최강의 대선 주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조기 대선이 이뤄질 경우 그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까. 과거 사례와 데이터들을 놓고 분석해 볼 때 이재명은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모델(2017년 대선)보다는 당대 최강의 대선 주자였으나 결국 대선에서 패한 이회창 모델(2002년 대선)에 가깝다.
◇이회창 모델
이회창은 집권당 후보로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1.53%포인트 차로 패했다. 이후 한나라당 총재로 2000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대선 후보로 재등극했다. 당시 이회창의 제왕적 당 운영체계는 현재의 ‘이재명 일극체제’ 못지않게 막강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회창 대세론’을 들먹였고 그는 ‘거의 대통령’ 행세를 했다. 하지만 지려야 질 수 없다는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패했다.
이회창의 대선 패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동했다.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노무현·이인제·김근태·한화갑 등 7인이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이 실시되면서 국민 관심이 폭발했다. 지지율 3%에서 출발한 노무현이 노풍을 일으키면서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렸다. 대한민국 선거에서는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부동의 1위 후보를 위협할 때 돌풍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이회창이 패배한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대세론’에 도취돼 변화와 개혁을 멀리한 것이었다. 이회창은 1997년 대선에서 ‘변화와 개혁,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을 내걸었지만 2002년 대선에선 ‘낡은 정치 청산’을 외친 노무현 후보에 의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회창 패배의 또 다른 요인은 아들 병역 비리 의혹 등으로 형성된 강력한 안티세력의 존재였다.
여기에 대선 막판 노무현·정몽준 간의 단일화가 이회창 대세론에 결정타를 날렸다. 대세론에 빠진 이회창에겐 연대의 대상도 없고 구상도 없었다. 반면 노무현은 ‘특권과 차별이 없는 나라’를 시대정신으로 내걸고 국민이 미래를 보고 선택하는 ‘전망적 투표’를 유도해 지지를 받았다. 이회창은 대선에 부합하지 않는 ‘김대중 부패 정권 심판론’을 내걸고 과거를 보고 찍으라는 ‘회고적 투표’에 기댔지만 실패했다.
◇문재인 모델
이재명 역시 현존하는 여야 대선 주자들을 통틀어 비교될 수 없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세론에 취해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다면 ‘이재명 대세론’은 허상에 가깝다. 이 경우 이재명의 미래는 문재인 모델보다는 이회창 모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윤석열 탄핵심판’ 상황은 8년 전 ‘박근혜 탄핵’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첫째,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과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간의 지지율 격차가 계엄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2030과 중도층에서 여당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둘째, 이재명의 지지율이 윤 탄핵소추 이후에도 30%대 초반 박스권에 갇혀 있다. 한국갤럽 2월 2주 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비율이 51%인데도 이재명 지지율은 34%에 불과했다. 이는 2017년 민주당의 대선 주자 문재인 지지율이 박근혜 탄핵소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셋째, 탄핵 반대 여론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는 그간 민주당에 의한 ‘다수의 폭정’과 헌법재판소의 절차적 흠결 및 정치 편향성 논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이재명이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가 크다. 3월 중 나올 것으로 보이는 공직선거법 2심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되면 민주당은 분열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문재인은 사법 리스크도 없었고 호감도도 높았다.
이재명은 과거 이회창처럼 대세론의 늪에 빠져 있다.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 비율은 여권 주자인 김문수·오세훈·홍준표·안철수 등보다 훨씬 높다. 이재명은 이회창과 마찬가지로 뺄셈 정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22대 총선 때의 ‘비명횡사’가 대표적이다. 비주류를 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극체제는 이재명에게 독으로 작용하는 중이다.
◇이재명의 운명
이재명 일극체제에서는 국민 관심을 끄는 대선 경선은 불가능하지만 국민의힘은 다르다. 김문수·오세훈·홍준표·한동훈·안철수·유승민·원희룡 등이 존재하는 다극체제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이 여권의 대선 경선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 만약 대통령 탄핵으로 5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대선 초반 적어도 3주간은 ‘여권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른바 ‘언더독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 또한 크다.
만약 이재명이 공직선거법 2심 판결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받아 대선에 출마할 경우 ①거센 안티세력의 반발 ②사법 리스크 ③다수의 폭정과 변화·개혁 외면 ④일극체제에서의 뺄셈 정치 ⑤기본소득 이외의 비전 부재 등으로 대세론이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이재명은 정책 뒤집기와 말 바꾸기 등 일관성과 진실성이 결여된 행보를 보였다. ‘믿을 수 없다’는 이미지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대선이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로 간다면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시대정신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이며,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할 수 있는 힘이다. 통상 대선은 이런 시대정신을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이다. 가령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특권과 차별이 없는 세상’ ‘낡은 정치 청산’은 시대정신을 담은 강력한 비전이었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아마도 ‘협치와 통합을 통한 국가 정상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그동안 ‘적대적 공생관계’로 얽혀 왔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상호 대립을 통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기득권을 연장하면서 공생하는 관계로 전개돼 왔다. 죽일 듯 서로를 공격하고 대립하지만 서로를 살리는 ‘역설의 정치’가 펼쳐졌던 것이다.
◇적대적 공생 청산
향후 조기 대선이 이뤄질 경우 정국은 ①윤석열 탄핵심판·이재명 2심 판결 결과 ②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 ③각 정파의 통합·분열 여부 등을 거치면서 요동칠 것이다. 경우에 따라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이 대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차기 대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비명횡사’는 지난해 4월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이 비명(비이재명)으로 분류되는 경선 후보자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킨 것. 이를 통해 민주당은 친명(친이재명) 단일대오를 형성함.
‘국민참여경선’은 당원들만 참여했던 경선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경선을 벌이는 것. 여야가 당내 민주화 및 공천시스템 개혁 요구에 부응해 2002년 대선 때 전격 도입.
■ 세줄 요약
이회창 모델 :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은 ‘대세론’에 도취돼 변화와 개혁을 멀리함. 제왕적 당 운영 논란을 불렀고 강력한 안티세력을 안고 있었던 이회창은 대선 때 ‘낡은 정치 청산’을 내세운 노무현에게 패함.
이재명의 운명 : 2017년 대선 때 문재인은 사법 리스크가 없었고 호감도도 높았음.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재명이 대세론에 취해 변화·개혁을 외면한다면 ‘문재인 모델’ 아닌 ‘이회창 모델’에 근접할 수도.
적대적 공생 청산 : 조기 대선 결과는 ‘윤석열 탄핵심판·이재명 2심 판결 결과, 여야 대선 후보 경선, 각 정파의 통합·분열 여부’ 등을 거치면서 요동칠 것. 경우에 따라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이 이뤄질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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