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가족들과 무쇠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즐거웠던 시절의 필자(오른쪽)와 동생.
시골집에서 가족들과 무쇠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즐거웠던 시절의 필자(오른쪽)와 동생.


■ 사랑합니다 - 나의 동생과 ‘무쇠솥 길들이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쇠솥에 밥을 했더니 밥맛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함께 사 놓았던 무쇠솥을 꺼내 동생의 말대로 들기름을 마른행주에 묻혀 가스 불을 약하게 해놓고는 골고루 솥 안을 문질렀다. 한참을 그렇게 하다 문득 생각하니 비싼 들기름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콩기름 생각이 났다. 번개보다 빠른 촉을 갖고 사는 나 스스로가 무척이나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굳이 들기름으로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콩기름을 듬뿍 묻혀 문지르다가 행주가 자동차 바퀴 빛으로 바뀌었을 때쯤 베란다에 가서 땀을 식히다 기름이 다 스며들었을 것 같아 일어서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솥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의심했다. 한걸음에 뛰어가 물을 한 바가지 받아 쫙 뿌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배로 커지더니 불덩어리가 천장으로 점프하였다.

“에구머니나!” 출입문을 열어젖히고 엘리베이터 탈 경황이 없어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뛰어가다 생각해보니 가스가 폭발하면 어떡하지 싶었다. 다른 집에까지 불이 붙으면 정말 큰 일이었다.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거실 가득 연기가 자욱했고 불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것일까?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토요일이 되어 시골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탑동에 살고 있는 동생도 무쇠솥을 싸 들고 함께 갔다.

“언니! 숯검정이랑 돼지 비계를 섞어서 닦아주면 최고래.”

도착하자마자 마당 한옆에 불을 지피고 돼지 비계를 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만둬 그러다 불붙으면 놀라지 말고….”

그러나 동생은 언니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집 앞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놀다가 마을 한 바퀴 산책하고 집에 와 보니 동생의 얼굴은 막걸리에 취한 듯 불그스레하였다. 부뚜막과 부엌 바닥에는 질퍽하게 물이 고여 있었다.

“불이야! 불!”

내가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는데 못 들었느냐고 묻는다. 불 끄느라 얼마나 허겁지겁했는지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에 신발도 한 짝만 신고 있었다. 내가 문질렀던 행주의 신장이 1m20㎝라고 할 때 동생이 문지른 돼지 비계는 1m85㎝라고 보면 비교하기 편할 것이다. 1m85㎝의 키로 천장 높이까지 점프했으니 불덩어리가 얼마나 큼직했을까 짐작이 갔다. 마당에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 부엌으로 옮겨와 아궁이 앞에 놓고 또다시 기름칠을 했단다. 옛날 시골집이라서 천장이 무척 높다. 그 높은 천장으로 불덩어리가 점프했으니 신발 한 짝이 벗겨질 만도 하였으리라. 콩기름처럼 비곗덩어리도 과열되면 불이 된다는 걸 그날 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언니! 우리 실험해 볼까?”

감자도 노릇노릇 누룽지도 노르스름하게 아주 잘 됐다. 시골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청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쇠솥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좋아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러웠다. 이럴 때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인 내가 체면을 한가하게 추스를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거 나 줄래?”

그 말이 입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차에서 내리려는 동생 경숙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거 나 줄래?” 하고야 말았다.

“그럴 줄 알았어. 왜 그렇게 얌전하게 앉아있나 했더니 갖고 싶었구먼? 더 길들였다가 줄게.”

한마디 툭 던졌다. 나와 서너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어려서부터 인정이 무척 많았다.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 무쇠솥을 선뜻 내주지 않으니 내 가슴이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기다림이 늘 서툰 언니는 다음날부터 여동생네 집으로 가 칫솔에 내 이름을 써 놓고 밥을 먹기 시작하였고 밥맛은 꿀맛이었다.

동기간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의 버팀목이 얼마나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는지를 안다. 순두부 같고 비단결 같은 여동생의 마음이 언제나 동기간들에게 추억의 꽃을 한 아름 안겨주듯이 말이다.

언니(농부의 아내) 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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