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성공헌상 민병돈 前육사교장

전두환 부정투표 지시때 거부
노태우 대북정책 비판후 사의
강직한 성품으로 참군인 평가

“尹이 임명한 사령관들의 추태
별들은 널렸는데 똥별뿐인가”


“계엄령 사태를 보면서 내가 군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소위 육군의 3대 사령관인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이 대통령 명령을 받아서 그대로 했고 자기가 그런 명령을 한 일은 없다고 하더라. 그저 자기 살겠다고 언론을 향해서나 정치권을 향해서나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그들이 장군인가.”

‘뼛속까지 군인’이라는 평을 듣는 민병돈(90·사진)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예비역 육군 중장)이 이렇게 통탄했다. 지난 14일 협성사회공헌상을 받은 후 밝힌 소감에서였다. 이 상은 협성문화재단이 매년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재단 측은 “민 장군은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군(軍)의 정치적 중립과 나라사랑을 실천했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민 전 교장은 “나는 군인으로서 내 할 일을 했을 뿐 사회에 공헌한 게 없다”며 한사코 수상을 사양했으나 재단 측이 간곡히 설득해 시상이 이뤄졌다.

육사 15기 출신인 그는 ‘참군인’으로 군 안팎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휘문중 시절에 6·25전쟁 학도병으로 참전해 총상을 입었으며, 육사 졸업 후 35년 동안 주요 지휘관으로 근무하며 부하를 자식처럼 사랑한 것으로 신망을 받았다. 이번 협성사회공헌상 시상식장엔 그의 지인들 120여 명이 참석해 축하를 했는데, 50여 년 전 그의 휘하에 있던 부하들이 대거 등장해 주최 측을 놀라게 했다. 그는 1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90세이니 옛 부하들도 모두 늙었는데, 이 추운 날씨에 전남 순천에서, 경기 전방 지역에서 와서 축하를 해 주니 고맙기도 하지만 송구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나를 과대평가해서 상을 주셨는데, 참으로 과분하고 염치없다”라고 했다. 앞서 수상 소감에서도 이렇게 말하며 우리 사회를 걱정했다. “내가 한 일이 없다. 단지 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고 살았다. 이것이 돋보여서 상을 받게 됐다 한다면 큰일 난 사회가 아닌가.”

1989년 육군사관학교 생도 졸업식에서 만난 노태우(왼쪽) 당시 대통령과 민병돈 육사 교장. 민 교장은 이날 대통령 면전에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한 후 사직했다.  자료사진
1989년 육군사관학교 생도 졸업식에서 만난 노태우(왼쪽) 당시 대통령과 민병돈 육사 교장. 민 교장은 이날 대통령 면전에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한 후 사직했다. 자료사진


군 재직 시절에 그는 하나회 초기 멤버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권의 군내 부정투표 지시를 거부했다. 1985년 청와대 핵심부대였던 20사단장으로 재직할 때 정권에 유리한 투표를 하라는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특전사령관으로 있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때는 당시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려 군을 동원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자 목숨을 걸고 반대해 관철시켰다. 육사 교장 시절인 1989년엔 생도 졸업식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 면전에서 정부의 북방정책과 대북 유화 기조를 비판한 후 사의를 표명하고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에도 공기업 사장 등 자리나 정치권 영입 제안을 거절해 왔다.

그의 강직한 성품은 이번 시상 소감에서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나라에 55만 대군은 있는데 군인은 없다. 별들은 널렸는데 장군이 없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령관들의 추태로 내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이 드러났다. 바람직한 것은 민 아무개 장군이라는 사람이 나이가 90이 되더니 치매에 걸려서 헛소리를 하는구나, 이런 평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내 말이 맞는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큰일 난 나라이다. 내가 창피해서 누가 ‘민 장군’하고 부르면 못 들은 척한다. 미군들은 형편없는 장군을 놋쇠로 계급장을 만들었다고 해서 브론즈 스타라고 하는데, 우리는 더 가혹하다. 똥별이라고 한다. 대통령부터 밑의 그 장관, 사령관들의 모습에 한편으로 마음 아프고 한편으로 부끄럽다.”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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