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군주와 국법
■ 여불위(呂不韋) ‘여씨춘추(呂氏春秋)’
공동체 이끄는 복돈
아들이 살인죄 범하자
진나라 군주 용서에도
국법대로 사형 집행
군주 오만·착각 맞서
法 아래 존재 환기시켜

상앙이 열 차례나 법을 보수했건만 신하들은 이를 오히려 사사로움을 실현하는 밑천으로 이용하였다. 강한 진나라라는 바탕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황제가 되지 못한 것은 군주가 법으로 관리들을 꾸준하게 다스리지 못해서이다.(‘한비자’)
군주가 관리들을 법으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 진나라는 중원을 통일하여 황제의 나라가 될 힘이 충분했음에도 적잖은 세월 동안 그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법의 서슬이 시퍼렇다는 진나라에서 군주는 왜 법으로 신하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신하들은 또 어떻게 법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복돈이라는 묵가공동체의 지도자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씨춘추’라는 고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묵가공동체는 공동체의 법을 무엇보다도 먼저 준수하는 평민들의 공동체였다. 그들은 공격용 전쟁에는 반대했지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는 최선을 다했다. 방어 성공 여부에 공동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 보니 묵가공동체는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과 중원 최고의 전투 집단이 되었다. 복돈이 이끄는 묵가공동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들은 수비용 전쟁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강한 전투력을 공격용 전쟁에도 활용하고자 했다. 하여 중원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진나라로 들어가 자신들의 전투 능력을 바탕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진나라 군주로서는 복덩이도 이런 복덩이가 없었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복돈의 아들이 살인죄를 범했던 것이다. 묵가공동체의 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해야 했다. 이에 따라 복돈은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소식을 접한 진나라 군주 혜왕은 복돈에게 그동안 세운 공이 많으니 아들을 사면해 주겠다고 하였다. 진나라 국법에 의하면 살인죄는 사형에 처해야 했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만큼 군주의 이름으로 이를 용서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복돈은 혜왕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가공동체의 법을 내세워 아들의 사형을 집행했다.
혜왕으로서는 무척 불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공동체의 법을 우선했다는 것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도 군주인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괘씸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군주의 오만에 불과했다. 복돈이 거절한 것은 진나라의 국법이 아니라 군주의 말이었다. 게다가 복돈은 “타인 살상을 금함은 천하의 대의”라는 공리를 앞세우며 공동체의 법을 집행했다. 겉으로는 묵가공동체의 법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천하의 공리와 그에 기초한 국법을 따랐던 것이다.
문제는 군주였다. 천하의 공리도, 나라의 법도, 공동체의 법도 모두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혜왕은 자신의 뜻을 그것들보다 앞세우고자 했다. 혜왕이 평소에 군주 또한 법 아래에, 법 안에 존재한다고 여겼다면 쉬이 취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복돈이 자신의 행위가 천하의 공리에 입각한 것임을 천명했음에도 언짢아했으니 혜왕은 천하의 공리마저 자기 뜻대로 무시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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