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前 제일기획 부사장

요즈음 책 펴내는 사람 많아
듣기보다 말하는 경향 짙어져

미술관 경비원 변신한 브링리
침잠의 시간으로 兄 사별 치유

수많은 사람과 얽혀 있는 세상
바쁠수록 의식적인 사색 필요


큰 조직에서 일할 때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절반 이상이라 온종일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기진맥진했다. 인풋은 없이 아웃풋만 있으니 기운 빠지고 지친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도 충전보다 꺼내 쓰는 게 더 많은 건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한다. 말이 너무 많다고. 말을 줄여야겠다고. 말이 많아지면 안 해도 될 말, 쓸데없는 말이 섞이기 마련이라 말을 마치고 나면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SNS에도 말이 넘쳐난다. 고수들의 깊은 지식과 통찰을 접하며 많은 걸 배우지만 걱정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다. 가짜뉴스까지는 아니어도 부정확한 얘기나 섣부른 말, 보태지 않아도 될 말, 쓰지 않아도 될 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물론, 같은 사안에 대해 수십 수백 가지 다른 의견과 목소리를 접하면서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 편끼리’가 드러나면서 확증편향이 심해진다는 지적은 이제 진부할 지경이다. 나 또한 그러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출판에도 나타난다. 대형 출판사 대표 한 분은 2023년 출판계를 회고하면서 “지속적인 도서 판매 감소로 인한 불황의 체감지수가 상당히 높았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는 텍스트가 힙하다는 보고도 있지만, 책 읽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것이 더욱 뚜렷한 경향이다. 그런데 전업 작가 말고도 책을 내는 사람, 특히 생애 첫 책을 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저마다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말하고 드러내는 사람은 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개인의 시대, 표현의 시대임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는 쪽으로 더 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이 있다.

패트릭 브링리. 우리나라에서만 2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다. 그에겐 영웅과도 같던 형이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떴다. 겨우 이십 대,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부모, 형제, 부부, 친구…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으로써 이별한 후 남은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던가. 고통과 슬픔의 크기와는 별개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못한다. 바쁘니까. 자식들을 먹여야 하고 일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서둘러 밥벌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이 슬픔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에 먹고 사는 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사람, 브링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은 세상에서 제일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뉴욕 한복판에 있었고, 그는 유명한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다. 사랑하는 형이 죽었는데 별일 없다는 듯 밥벌이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으로 들어간다. 관람객이 된 게 아니라, 그곳에 취직을 하고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그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경비원’이 된 그는 일과의 대부분을 가만히 서서 보냈다. 미술관의 진열실에 서서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남긴 예술품들을 만나고 보았다. 날마다 그런 시간을 보낸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예술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예술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곳에 걸린 세계 최고의 예술품들이 그를 위로한 것일까, 아니면 속세와 한발 떨어져 보낸 침잠의 시간이 치유로 이어졌을까. 그는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들 속에 묻혀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어느 날 다시 그곳으로부터 걸어 나온다. 그러곤 책을 쓰고 작가가 된다. 이 책이 바로 그 기록이다. 이제 그의 슬픔은 다 지나간 것일까. 얼마 전 내한한 그가 우리 책방에 와서 북토크를 했다. 그때 만난 그는 아주 유쾌하고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날 북토크에 참여한 독자들의 후기를 보니, 그가 슬픔을 대한 방식이 그걸 지켜본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와 통찰을 준 것 같았다. 슬픔을, 상실을 저렇게 대하고 보낼 수도 있구나 하는 발견이랄까. 그는 다음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나는 30년가량 일한 회사에서 퇴직한 후 몇 년간의 자유인 생활 끝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커리어마저 바쁘게 살 생각은 아니었다. 더구나 내가 택한 일은 아날로그의 대명사, 책과 함께하는 일이다. 책방 주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차렸다. 사회 시스템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의 삶은 나의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수많은 사람과 얽혀 돌아가는 생활이므로 내 마음대로 속도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다. 바쁠수록 의식적으로 가만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살다 보면 꽤 힘든 겨울을 지날 때가 있다. 우리가 지인들에게 건네는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은 인생에 꽃길만 있지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브링리는 피붙이의 죽음이라는 고통 앞에서 예술 작품 속에 둘러싸여 예술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았다. 우리도 겨울이 그저 추운 시절로 끝나지 않고 끝내는 봄이 되게 하려면 비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브링리는 예술품에 둘러싸여 가만한 시간을 보내며 슬픔이 흐르도록 했다. 당신에겐, 또 내겐 그것이 무엇일까. 우선 가만히 생각해볼 일이다.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前 제일기획 부사장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前 제일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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