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뒤 첫 탄핵심판 출석 尹 비상계엄 선포 때와 달리 차분 양측 모두 법원 권위·규범 준수
與野의 ‘법대로’가 낳은 파국 여전히 막말에 협상·합의 무시 정치권 각성해야 사회 정상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오는 25일 최후 진술을 마지막으로 종결된다. 1·2차와 지난 18일 9차 변론을 제외하고 윤 대통령은 7차례 헌법재판소에 출석했는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대통령이 직접 변론에 나선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불출석했었다.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은 12·3 계엄 선포 당시와는 다른 인물 같았다. 계엄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같았지만, 12월 12일 부정선거 가능성을 제기했던 담화 발표 당시 다소 상기됐던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 1월 23일 4차 변론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직접 신문하는 과정에서도 차분했다. 반대편인 탄핵 청구인 대표 자격의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정감사 기간 여당 의원들에게 ‘발언권 중지’를 남발하고, 다른 법사위원들보다 5.75배 더 발언하면서 이례적인 위원장의 ‘마이크 독점’을 보여줬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탄핵심판 법정이 찬탄과 반탄 장외 시위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데다, 헌재의 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에도 차분하게 진행됐던 이유는 뭘까. 재판 방해·위협 목적의 모욕 또는 소동을 일으킨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형법 제138조 ‘법정모욕죄’ 위반 소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측 모두가 법리에 집중하면서 ‘룰’을 지켰기 때문이다. 반면, 여야가 내내 국회에서 내세웠던 것은 ‘법대로’였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법 등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의결한 탄핵소추안은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를 포함해 29차례, 특별검사법 발의도 23차례에 달한다. 또, 민주당은 ‘12·3 비상계엄’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해 50명 이상을 고발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도 ‘법’으로 대응했다. 윤석열 정부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38회나 행사했는데, 민주화 이후 역대 최대였다.
하지만 여야가 내세운 ‘법대로’가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지나면서 정치적 이해에 따른 자의적 법 해석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속속 증명되고 있다. 제22대 총선에서 법조인 출신 당선자가 61명(20.3%)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은 입법과 법안심사 전문성 때문이었겠지만, 상당수는 정치적 이해를 쫓기 위해 법 해석과 고발 사건을 도맡는 ‘법 기술자’로 전락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마저도 “탄핵 관련해 법률 조항이 너무 많이 나와서 나도 이제는 뭐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협상과 합의라는 규범이 사라진 ‘정치의 사법화’, 이에 따른 ‘정치 실패’ 결과물이 ‘아마겟돈’ 같은 지금의 현실이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여야가 차분하게 입장과 논리를 설명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진짜 정치’에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 야당을 더 설득했다면, 사상 초유의 야당의 ‘감액 예산’ 통과에 맞서 국민에게 먼저 부당성을 호소했다면 지금의 현실은 달라졌을 것이다. 민주당이 일방 독주를 자제하고, 여야가 협치에 호응했다면 대한민국은 민주화 이후 3번째 탄핵이라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은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나 떨어뜨린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개시한 ‘관세 전쟁’에 대한 대응과 정부 지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지난 13일에도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경제 책임 소재를 놓고 “치매” “짱구” 막말을 주고받는가 하면,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 적용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올해가 한국 사회에 ‘잃어버린 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없어 보인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이 혼란을 촉발시킨 정치권은 각성해야 한다. ‘협상과 합의’라는 정치 규범을 복원하고, 상호 존중 아래 질서를 유지하면서 합리적 토론을 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탄핵심판 이후에는 ‘진짜 정치’가 진짜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