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조선보다 먼저 서울(한성)을 수도로 정한 나라는 백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 서기 660년까지 678년 동안 존속했다. 중부와 서남부 지방(지금의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 걸쳐 있었으며 한때 한반도에서 가장 힘센 국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제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운데 가장 먼저 강대국이 됐지만 가장 빨리 무너졌다.

얼핏 백제 하면 공주와 부여를 연상하게 된다. 공주의 무령왕릉과 부여의 부소산성, 나성의 인상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역사에서 공주(웅진)가 수도였던 기간은 63년(475∼538)이며, 부여(사비)가 수도였던 기간은 122년(538∼660)에 불과하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 태자 시절에 효성이 지극하고 지혜로워 ‘해동증자(海東曾子)’로 불렸다. 의자왕은 집권 초기 강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잘 이끌었다. 그러던 중 신라와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고 왕권이 안정되자 자만과 나태에 빠졌다. 결국 집권 말기에 이르러 성군에서 폭군으로 전락했다.

의자왕 하면 으레 대명사처럼 따라붙는 것이 ‘삼천 궁녀’ 이야기다. 백제가 멸망하던 660년에 사비성에 있던 궁녀들이 백마강(충남 부여의 금강 하류) 절벽(낙화암)에서 물속으로 몸을 던졌는데, 그 수가 삼천 명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삼천 궁녀는 문학작품 속에서나 보이는 허구적 표현이다. 조선 중기 때 한 시인의 시에서 ‘궁녀 수 삼천’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전부다. 어떤 역사적인 기록에도 ‘삼천 명’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의자왕의 서자 숫자가 41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왕비 외에 많은 여인을 거느렸음은 분명하다. 또한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삼천 명’은 아니다. 단지 장렬한 죽음을 선택한 것을 상징하는 수사일 뿐이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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