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자주독립국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세운 독립문. 1963년 1월에 사적으로 등록됐으며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독립문은 1896년 11월 21일 착공해 1년 뒤인 1897년 11월 20일 마무리됐다. 문 중앙에 아치형의 홍예문이 있고, 홍예문의 중앙 이맛돌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이화(李花·오얏꽃) 무늬가 방패 모양의 문양판에 새겨져 있다. 이맛돌 상단 앞뒤에 가로쓰기로 ‘독립문’과 ‘獨立門’이라 각각 쓰고, 그 양옆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 놓았다.
독립문은 반일(反日)의 상징일까? 그렇지 않다. 반청(反淸)의 상징이다. 조선이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된 자주국임을 천명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갑오개혁(1894~1896)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19세기 말의 자주민권, 자강운동의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친일개화파 등이 주축이 돼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했던 개혁운동으로 실패했다. 독립협회는 청나라와의 관계 단절 시점을 독립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독립문이 들어선 곳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독립문 앞에 영은문 기둥을 받치던 밑돌인 영은문주초(사적 제33호) 2개가 아직도 있다.
영은문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영빈관인 모화관(慕華館)의 정문이다. 모화관은 후에 독립관으로 용도 변경돼 독립협회의 사무실 겸 집회소로 사용됐다. 독립협회가 발행하던 ‘독립신문’은 1896년 6월 20일 자(제33호) 논설에서 독립문 건설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영은문 있던 자리에 새로 문을 세우되 이름은 독립문이라고 하고, 새로 문을 그 자리에 세우는 뜻은 세계 만국에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표를 보이자는 뜻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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