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동네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라면 단연 ‘계 오야(契主·계주) 아줌마’의 야반도주였다. 일자리가 많은 공업도시여서 엄마들도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나섰던지라 규모가 꽤 큰 계들이 성행했다. 조용할 리 있겠는가. 잊을 만하면 돈 들고 튄 계주들 얘기로 동네가 콩 볶듯 시끄러웠다.
계주였던 친구 엄마가 밤중에 도망을 가 버렸고, 연일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고함을 질러댔다. 매일 시달리던 친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아줌마들이 악다구니를 하고 있는데, 마당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푹 쓰러졌다. 친구 아버지가 농약을 먹은 것이다.
친구는 하던 일도 접고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병간호하랴, 동생들 학교 보내랴, 정신없이 지냈다. 아버지가 좀 나았다는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친구 가족 전체가 밤에 사라져 버렸다. 농약을 조금 먹었을 거다, 돈 챙긴 엄마와 합류했을 거다, 뒷말이 무성하게 돌았다.
만나기 싫은 사람도 길에서 마주치고, 듣기 싫은 사람의 소식도 들리곤 하건만 그 친구는 그날 이후 전혀 소식을 알 길 없다. 한때 마음을 나누던 친구인 데다 좋지 않은 일을 당한 뒤여서 종종 생각났다.
요즘은 보이스피싱, 전세 사기, 폰지 사기 등등의 경제 사고가 잊을 만하면 터지곤 한다. 의외의 함정은 잘 아는 사람들과의 돈거래에 있다. 빌릴 정도로 궁핍하지도, 빌려줄 만큼 여유롭지 않은 나도 지난해 ‘돈 사고’를 당했다. 돈을 빌려준 뒤 약속한 날짜에 받지 못하면서, 그 여파가 서서히 밀려드는 중이다.
지인들과 얘기 나누는 과정에서 대부분 빌려준 돈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금융기관을 통해 돈을 융통할 방법이 있는데도 개인 간에 돈거래가 많다는 데 우선 놀랐다. 나름 깐깐하게 관리해온 나도 연루되었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피해를 본 친구들의 사유는 대개 비슷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고,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고, 꼭 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돈도 못 받고 연락도 끊어졌을 때에야 깨달았단다. ‘나한테 손 벌릴 정도면 이미 여러 사람에게 빌려 갚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는 것과 ‘금융 거래가 막혔을 정도면 초저녁에 경제력이 무너졌을 것’임을.
개인 간 돈거래에서 사고가 워낙 많이 발생해서인지 ‘빌려줄 땐 못 받는다고 생각하라’ ‘안 받아도 될 만한 돈을 그냥 주라’는 말이 금언처럼 돌고 있다. 돈거래로 피해 본 친구들의 대처 방법은 뜻밖으로 단순했다. 폰지 사기를 당해 소송을 진행하는 적극적인 친구도 있지만, 대개는 ‘안 주는데 어떡해’라며 포기 상태였다.
빌린 쪽은 잠적하거나, 뻔뻔하기 이를 데 없거나,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서원 전체에게 피해를 끼치고 해외로 도주했다가 몇 년 만에 나타나 보란 듯이 전시회를 연 최강 철면피도 있었다. 친구들은 돈보다 믿음이 뭉개진 일로 마음 아파했다. ‘내 맘 같은 줄 알았는데, 검은 속으로 접근한 걸 몰라 봤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피해 당한 지인들이 내게 해준 조언은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 조금씩이라도 받아 내라”는 것이다. 앉아서 빌려주고 무릎 꿇고도 못 받는 게 돈이란다. 시편과 잠언은 ‘이자를 위해 돈을 뀌어주지 말라’ ‘보증 서지 말라’고 되풀이해서 충고한다. 일찍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도 ‘돈 빌려 달라는 걸 거절하면 친구를 잃는 일이 적지만, 돈을 빌려주면 친구를 잃기 쉽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에 이끌려, 이런저런 사정으로 돈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왜 남의 돈을 안 줄까. 힘들 때 편의를 봐 줬으면 약속을 지키는 게 도리 아닌가. 이 당연한 생각이 통하지 않는 위험한 세상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우리 앞집에 살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내 소설 ‘17세’의 주인공 무경이처럼, 나는 상업학교에 가기 싫어 부모 몰래 고교 입시를 치르지 않았다. 어영부영 지내다 동네 친구를 따라가 치른 ‘중졸 여사원 입사 시험’에 1등을 하는 바람에 고졸들이 근무하는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일했다. 돈 주고도 못 할 경험을 돈 받고 한 덕분에 나의 첫 소설이 탄생했다.
대기업 울산공장으로 사원 복지도 좋았는데 다양한 판촉 행사가 종종 열렸다. 어느 날 자전거를 할부로 판매한다는 소식에 팸플릿을 들고 와서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옆집 아저씨가 기웃거리더니 자신도 자전거를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나도 선뜻 답을 못 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데다 술만 먹으면 아내를 때리는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곤란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아저씨의 자전거 구입을 도와주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회사로 와서 내 이름으로 산 번쩍이는 자전거를 타고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돈을 안 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저씨는 6개월 동안 하루도 어기지 않고 딱딱 할부금을 건넸다. 자전거 값을 벌기 위해 일용직 일을 열심히 나갔다고 한다. 딸 같은 옆집 아이에게 실수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돈 모을 방법이 없었던 시절, 일당을 벌어 성실하게 할부금을 건넨 옆집 아저씨가 새삼 고맙고, 아저씨를 의심하며 마음 졸인 일이 미안하다.
길지 않은 인생,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잘된 사람 못 봤다. 부모의 ‘빚투’가 잘 나가던 자녀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잠적한 내 친구는 만날 길 없지만, 흔적은 각인되고 소문은 널리 퍼지는 세상이 되었다. 선의로 도와준 ‘친구’에게 ‘그들’이 도리를 다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