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속담에 나오는 범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호랑이가 아니라 한국표범으로도 불리는 아무르표범(이하 ‘표범’)일 수 있다. 삼일절인 1일 한국범보전기금과 환경부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표범은 한민족에게 낯설지 않은 존재였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1년에 100여 마리가 포획될 정도였다.
표범은 호랑이와 함께 범이라고 불렸다. 범과 까치가 주인공인 민화 호작도(虎鵲圖)를 보면 호랑이뿐 아니라 표범도 등장한다. 표범은 특유의 매화무늬 가죽 덕분에 위장의 달인으로 불렸지만, 밀렵의 대상도 됐다.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재위 1545∼1567) 당시 기록을 보면 표범 가죽은 호랑이 가죽보다 귀했다. 당시 호랑이 가죽 한 필 값이 쌀 60가마니였다. 부의 상징이었던 표범 가죽은 조선시대 초상화에도 자주 사용됐다. 이렇듯 사바나 초원이나 열대 우림이 아닌 한반도도 ‘표범의 땅’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제는 맹수에 의한 피해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을 벌여 30년간 표범 1092마리를 포획했다. 이어진 6·25전쟁으로 서식지는 사라지다시피 했고, 1970년 경남 함안군에서 사살된 수표범을 끝으로 남한에서는 표범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연해주를 중심으로 150마리 정도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개체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20∼30마리까지 개체수가 줄었던 만큼 근친교배로 유전 다양성이 낮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실제로 발바닥이 희거나 꼬리가 짧은 개체 등이 계속해서 발견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표범을 멸종 위기에서 보호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한국범보전기금과 국립생태원도 2020년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유전 다양성 연구, 잠재 서식지 분석을 함께해왔고, 올해도 먹이원 분석을 실시하기로 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부 사업은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국내에선 표범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보호하며 작년부터는 표범 번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내 유일하게 표범 3마리를 보유한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청주동물원은 표범을 추가 도입하기 위해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와 협의 중이다.
야생 표범 복원은 생태계 건강성 회복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범 없는 굴’에서 증가하고 있는 멧돼지와 고라니 등의 개체수를 조절해 생태계 균형을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사람과 조우해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도 극히 드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복원할 수는 없더라도 생태통로를 만들어 표범이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식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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