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보수의 광장 집결, 왜

3·1절 주력집회, 반탄이 찬탄을 압도… 尹 탄핵 계기로 ‘미완의 보수주의 프로젝트’ 수행
86기득권 및 문·조·명의 행태에 대한 강한 거부감… 광장 집결로 ‘동물성 보수’의 탄생 알려



‘찬탄 1만8000명 대 반탄 12만 명’. 3·1절인 지난 1일 서울 중심부에서 열린 탄핵 찬반 주력집회와 관련, 경찰이 추산한 참석자 규모다. 찬탄(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 규모는 야권 총동원령 아래 열렸음에도 반탄(탄핵 반대) 집회의 6분의 1에 못 미쳤다. 그 많은 보수는 왜 광장에 집결했을까.

◇광장을 지배한 보수

보수의 결집은 주말마다 열리는 찬탄·반탄 집회장에서 분명히 느껴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절 집회 하루 전 페이스북에 “뜨거운 함성으로 (서울) 안국역 사거리를 가득 채워 달라”고 호소했고, 집회 당일엔 “답은 광장의 함성 속에 있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야권 공동주최로 심혈을 기울인 집회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반탄 집회의 규모는 보수의 결집을 말해주는 좋은 데이터다. 각 도시에서 거의 매주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부산(2월 1일) 1만3000명, 대구(2월 8일) 5만2000명, 광주(2월 15일) 3만 명, 대전(2월 22일) 1만7000명을 기록했고, 3·1절 집회에서 광화문과 여의도를 합쳐 12만 명으로 고점을 찍었다. 주말마다 이들 도시에서 벌어진 반탄 집회 참가자 수는 해당 지역 역대급 기록으로 집계됐다. 운집한 규모로만 보면 찬탄 집회를 압도했다.

여론조사에서 잡힌 반탄 여론 역시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보수의 결집을 말해주는 신호다. 전국지표조사(NBS, 2월 24∼26일)에서 탄핵 인용 대 기각은 각각 54% 대 38%였다. 미디어리서치(2월 26일) 조사에선 53.6% 대 43.6%로 집계됐다. 리얼미터(2월 20∼21일) 조사는 52.0% 대 45.1%를, 한국갤럽(2월 25∼27일) 조사에서는 59% 대 35%를 기록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정국 때에는 탄핵찬성 여론이 80%를 넘나들었고, 장외집회의 세 대결 역시 압도적인 찬탄 우위였다. 당시 탄핵 심리에 참여했던 보수 성향의 헌법재판관은 후일 기자에게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촛불에 타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광장의 여론 때문에 현실과 타협했다는 고백이었다. 8년 전 찬탄을 외쳤던 군중이 모두 극좌가 아닌 것처럼 지금 반탄을 부르짖는 행렬이 모두 극우가 아니다.



◇진보 헤게모니 시대

보수는 오랫동안 짓눌려 있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개발독재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1980년부터 사회문화적 진보 헤게모니가 급속히 형성됐다. 이 시기의 보수는 민주화운동을 토대로 한 사회 변혁의 비주류로 인식됐다.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거쳐 들어선 ‘1987 체제’를 맞아 더욱 강력해진 진보 헤게모니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진보는 더 개혁적으로 여겨졌고, 더 도덕적으로 인식됐고, 더 정의롭게 느껴졌으며, 더 선한 것으로 묘사됐다. 보수는 후진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불의하며 악한 존재로 치부됐다.

‘1987 체제’ 이후 보수의 선거 전략은 대부분 진보와의 연합이거나 선거동맹이었다. 김종필이 김대중과 손잡아 공동정부를 만든 것도(1997년), 정몽준이 대선 후보 단일화로 노무현 당선을 도운 것도(2002년), 박근혜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책략에 도움받아 권력을 잡은 것도(2012년), 윤석열이 중도개혁 노선의 안철수·이준석과 손잡아 집권에 성공한 것도(2022년) 모두 진보 헤게모니 시대를 근근이 살아가는 보수의 힘겨운 생존전략이었다.

보수는 진보의 정책을 베끼기 일쑤였다. 자력으로 정권을 잡았던 이명박마저 임기 첫해 광우병 파동으로 휘청거리자 집권 1년여 만에 친서민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그래야 중도 외연 확장을 노려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보수는 진보의 눈치를 보느라 사람도 아끼지 않았다. 보수의 개혁과 혁신은 진보좌파가 집중 공격하는 사람을 손절하는 것이었다(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페이스북). 지난해 4월 22대 총선 당시 이재명 대표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친명 후보들을 대부분 끝까지 지켜냈지만,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끈 국민의힘은 젊은 보수들의 과거 발언과 행적이 논란이 될 때마다 선제적으로 잘라냈다.

◇동물성 보수의 탄생

보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86 운동권 출신 기득권력의 타락과 문재인·조국·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치권의 무능·부패·비호감·사법 리스크를 확인하면서다. 보수에게 문·조·명은 과거의 트라우마와 부채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식물성 보수에서 동물성 보수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보수의 정체성 찾기는 박근혜 정부 때 배태됐었다. 박근혜 정부는 진보를 내세운 친북 성향의 좌파 진영과 정면승부를 벌였다.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해 헌법재판소의 인용 의결을 이끌어냈고(2014년), 이석기의 내란음모를 단죄했다(2015년). 박근혜 정부는 그러나 일부 보수 정치인들과의 탄핵 연대를 획책한 민주당의 작전에 말려 조기 마감됐다.

‘미완의 보수주의 프로젝트’는 문재인 정권 5년을 건너뛴 후 윤석열 정부 들어 재가동됐다. 동맹과 자유의 연대가 확인됐고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공고화됐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논란, 건국절 논란 때마다 정면돌파를 택했다. 보수는 정치 현안에 눈떴고, 피아를 구분하게 됐으며, 팬덤 정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탄핵’의 아픔을 성찰하며 민주당이 주도하는 다수의 폭정, 그리고 대통령 탄핵·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적법절차 훼손에 분노했다.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엉성하기 짝이 없는 비상계엄이었지만 이것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의 의정 폭주를 알게 해줬고,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행정 권력마저 차지할 경우 닥칠 수 있는 위험성을 일깨웠다. 보수는 ‘국기 결집’을 도모했고 체제전쟁에도 눈을 뜨게 됐다. ‘1987 체제’ 이후 오랫동안 진보는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보수는 해야 할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보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

◇마상의 세계정신

1806년 10월, 36살의 청년 헤겔은 독일 점령지 예나를 지나가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황제의 행렬을 목격한 후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마상(馬上)의 세계정신을 보았네. 그러한 개인을 본다는 것은 놀라운 느낌이야.” 비상계엄 이후 탄핵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미완에 그친 보수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임무를 발견했다. 보수 반탄세력의 광장 집결은 진보 헤게모니 시대에 대한 강력한 거부 선언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사회과학에서 의도하지 않았거나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말할 때 쓰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이 처음 사용한 말로 물리학의 ‘녹온(knock-on) 효과’와 유사.

‘세계정신’ Weltgeist는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세계사 속에 자기를 전개해 실현하는 신적 이성으로서의 정신. 헤겔은 독일 예나를 지나가는 나폴레옹의 모습 속에서 ‘마상의 세계정신’을 목격.

■ 세줄 요약

광장을 지배한 보수 : 3·1절 서울에서 열린 반탄 집회가 찬탄 집회를 압도. 매주 비슷한 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탄핵정국에서 보수의 결집을 말해주는 데이터임. 반탄 여론조사 결과도 8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높아.

진보 헤게모니 시대 : 1980년 이후 사회문화적 진보 헤게모니가 급속히 형성되면서 보수는 사회 변혁의 비주류로 인식됐음. ‘1987 체제’ 이후 보수의 선거 전략은 대부분 진보와의 연합이거나 선거동맹이었음.

동물성 보수의 탄생 : 보수의 변화는 86 기득권과 문·조·명의 타락상을 확인하면서 시작돼. 탄핵 정국을 계기로 보수는 미완의 정체성 프로젝트를 수행 중. 보수의 광장 집결은 진보 헤게모니 시대에 대한 강력한 거부 선언.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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