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무슬림과 종교 식단
풍요의 시대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자발적으로 단식을 한다. 때로는 치료나 정치적인 이유로 단식이 활용되기도 한다. 기독교나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도교 등 여러 종교에서도 단식 전통이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한 달이나 단식을 법으로 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몹시 낯설다.
나는 70여 개국을 여행한 덕분에 다양한 문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편이지만, 과거 정보 없이 라마단(Ramadan)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낮에는 음식점이 문을 열지도 않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음식도 어디 숨어서 먹어야 한다니! 라마단 문화를 모른 채 무슬림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라마단은 전 세계 무슬림의 금식 기간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력에서 신성한 달(聖月)로 여겨지는 약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해야 한다. 물도 마실 수 없다. 이 기간 낮 동안에는 식당이 대부분 문을 닫고 공공장소에서도 식사가 금지된다. 예외적으로 임신부나 어린이, 노약자들과 여행객은 식사를 할 수 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전 준비 없이 무슬림 국가를 여행하면 의도하지 않게 무슬림과 같은 금식 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라마단 기간 여행이나 출장은 가도 괜찮을까. 문제는 라마단 시작 시점을 몇달 전에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라마단 시작일은 초승달을 관측한 후 각국의 최고 종교지도자가 발표하는데, 이슬람력에는 윤달 개념이 없어 날짜가 매년 변하기 때문이다. 20억 명이 넘는 무슬림 인구가 참여하는 라마단 기간을 한두 달 전에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이 기간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미팅 때 물 한잔 못 마실 수 있고, 단축 근무도 많아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라마단 기간 무슬림 국가를 방문하면 이색적인 여행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을 체험해볼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일부 무슬림들은 이 기간을 다이어트 기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몰 후 첫 식사인 ‘이프타르(Iftar)’에 풍성한 식사를 준비하고 과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때문에 종교계와 의료계, 정부와 언론이 과식과 폭식을 자제하라는 캠페인이 매년 벌어지기도 한다. 이슬람 성원에는 가난한 이들이나 여행객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며,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성원에서도 이프타르 음식을 나누고 있다. 라마단이 끝나면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 축제가 열려 한 달간 자기성찰과 금식 종료를 축하하며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전통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라마단은 개인적으로 인내, 겸손, 영성 함양 수련 기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굶주린 이들을 돌아보는 공동체의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종교인 기독교와 천주교에도 라마단과 유사한 취지의 금식 전통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Lent)’이 그것이다. 무슬림만큼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지만, 40일간 육식을 피하거나 단식과 절제를 실천하며 신앙을 되새긴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금식
‘금식’이나 ‘단식’이 그렇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 영어 ‘breakfast’가 ‘단식을 깨다’라는 의미다. 영어 ‘fast’, 스페인어 ‘ayuno’, 프랑스어 ‘Jeune’, 튀르키예어 ‘Perhiz’, 아랍어 ‘ صوم /صيام ’, 말레이어 ‘Puasa’ 등이 같은 뜻이다. 오늘날 단식은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환경보호를 위한 ‘탄소금식(Carbon fast)’, 무의미한 휴대전화 사용을 절제하자는 ‘미디어 금식(Media fast)’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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