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함께 기도한 부시 “MB는 친구”
오바마, 외할머니 얘기에 감동
MB 디테일에 한미동맹 더 굳건

韓, 대통령 리더십 빨리 세우고
젤렌스키 실패보다 MB 본받아
트럼프식 정상 담판 대비할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모욕하고 박대한 것은 충격적이다. 다음 날 뒤끝도 작렬했다. 미 주요 인사들은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정권 교체를 위협했다. 이틀 뒤 트럼프는 국방장관에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중단하라”며 치명타를 날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영토를 뜯기고 미국에 희토류를 넘겨줘야 할 판이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날카로운 분석이 눈길을 끈다. 도덕이나 정의가 아니라 힘이 곧 국제질서인 세상이 됐다.

트럼프가 정상끼리 거친 ‘담판’을 선호하면서 어느 때보다 정상외교가 중요해졌다. 외교 전문가 사이에서는 가장 뛰어난 정상외교를 펼친 인물로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꼽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자를 직접 찾아가 “특전사를 보내 왕실 경호원들을 훈련시켜 주겠다”는 파격 제안으로 400억 달러 규모의 바라카 원전을 수주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백미는 한·미 정상외교다. 2008년 2월 MB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초대로 캠프데이비드를 방문했다. 두 정상이 골프 카트를 탄 사진이 많이 보도됐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은 따로 있었다. 캠프데이비드를 구경시켜 주던 부시가 길옆 20평 규모의 작은 교회를 가리키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었는데, 주말이면 가족들이 예배를 보는 곳”이라 했다. MB는 예정에 없이 교회에 들어가 김윤옥 여사와 기도를 드렸다. 한참 뒤 눈을 떠보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시가 옆에서 환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만찬장에서 부시가 “이번에는 내가 식사 기도를 인도하고 싶다”고 했다. 양국 정상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다. 다음 날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국민의 숙원이던 ‘90일간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동의했다. 서울에 있는 미 대사관 앞의 비자 인터뷰용 긴 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7월 8일 G8 확대 정상회의 때는 부시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소개했다. “내 친구(my friend)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해 11월 7일에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틀 만에 MB와 통화를 했다. MB는 그 직전 타계한 오바마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깊은 조의를 표했다. 하와이에서 중학생 때까지 외할머니 손에 컸던 오바마는 외할머니 병세가 악화하자 이틀간 치열한 대선 유세를 접고 직접 병문안을 갔을 만큼 애틋했다. MB가 감정선을 건드리자 오바마는 “사실 하와이에 살 때 한국계와 많이 만나 가까웠다. 불고기와 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두 정상은 이후 통역 없이 영어로 통화를 했다.

MB는 부시가 대북 쌀 지원을 꺼내자 “군량미로 비축될지 모르니 장기간 보관이 힘든 옥수수나 밀가루가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즉시 부시는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지시를 바꾸었다. 오바마도 임기 내내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한국의 결정을 우리는 지지한다”며 전략적 인내 원칙을 지켰다. MB가 두 정상과 가까워지자 그렇게 만나기 까다롭던 백악관 비서실장·안보보좌관·국무장관 등이 앞다퉈 주미 한국대사와 식사를 했다. 그러곤 “24시간 언제든 전화하라”며 뒷면에 긴급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고 한다. MB의 치밀한 디테일이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다졌다.

트럼프의 압박 외교는 더 거칠어질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데서 탈피해 제조업 부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로나 사태 때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뼈아픈 교훈도 얻었다. 그동안 미 국채를 대량 발행해도 연준의 양적 완화와 중국·일본 등의 매입으로 무리 없이 굴러 왔다. 하지만 중국이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고 일본도 주춤거린다. 트럼프의 감세 조치로 재정 적자가 확대될 조짐이어서 미 국채가 예전처럼 시장에서 원활하게 소화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노믹스를 위해서도 상대 국가에 거친 관세 및 환율 압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와 담판을 위해 탄핵 기각이나 조기 대선을 통해 서둘러 대통령 리더십부터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그 후 정상회담 때는 젤렌스키와 같은 맞대응보다 MB식 디테일 외교에 길을 물어야 할 것 같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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