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튀르키예 디야르바키르에서 쿠르드노동자당(PKK) 지지자들이 수감 중인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PKK는 오잘란의 무력 중단 촉구에 따라 튀르키예와의 휴전을 선언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월 27일 튀르키예 디야르바키르에서 쿠르드노동자당(PKK) 지지자들이 수감 중인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PKK는 오잘란의 무력 중단 촉구에 따라 튀르키예와의 휴전을 선언했다. AFP 연합뉴스


■ Global Focus

26년 수감중인 수장 오잘란
“이젠 투쟁 멈추자” 휴전선언
독립국가 좌절·핍박에‘백기’

중동 각지 쿠르드족 입장차
시리아 민주군 “우리와 무관”
독립보단 자치권 확대 무게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벌였던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설립 47년 만에 정부와의 휴전을 선언했다. PKK 공동 창립자로 사형을 선고받고 1999년부터 장기 수감 중인 압둘라 오잘란(77)이 지난 2월 27일 “무기를 내려놓고 투쟁을 멈추자”는 뜻을 밝히자 정부가 이를 수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오잘란의 무력투쟁 중단 촉구는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고 과도정부가 수립되는 등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쿠르드족이 독립을 추진할 수 있을지, 튀르키예와 새로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독립국가 세우지 못한 중동 최대 민족 쿠르드족 = 쿠르드족은 튀르키예를 비롯해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분포된 소수 민족이다. 2500만∼3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쿠르드족은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최대 민족 중 하나다. 중세 아이유브 왕조를 열어 중동 대부분을 지배하며 십자군과 싸워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영웅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가 쿠르드족이다. 전체 인구의 가장 많은 1400만 명이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인 쿠르드족은 고유의 정서, 문화, 언어를 가졌지만 거주지가 분산돼 유랑민족으로 치부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에 확산한 민족주의 영향으로 쿠르드족도 독립을 추구했다. 당시는 튀르키예를 중심지로 하는 다민족 국가인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을 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위해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고 쿠르드족을 끌어들였다.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되자, 쿠르드족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1차 대전 승전국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쿠르드족의 국가 쿠르디스탄 건설 구상이 들어간 1920년 세브르 조약이 체결됐지만, 이후 수립된 튀르키예 공화국이 반대하자 세브르 조약은 폐기됐다.

◇쿠르드노동자당(PKK) 창설…튀르키예 정부와 갈등 심화 = 이후 쿠르드족은 각국에서 독립을 위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1920년대 튀르키예는 세속화를 명분으로 언어, 이름, 의류 등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반발한 튀르키예 남동부지역의 쿠르드족 일부는 1978년 무장단체 PKK를 설립한다. 쿠르드족이 ‘아포(아저씨)’로 부르는 오잘란이 이끌고 쿠르드족 대학생들이 모였다. 쿠르드 세계에서 오잘란은 ‘넬슨 만델라’급 인물이다. PKK는 혁명적 사회주의에다 쿠르드 민족주의를 결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쿠르드족이 사는 쿠르디스탄에 독립 공산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다. 공산 혁명을 통해 튀르키예와 자본주의 세계를 누른 뒤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PKK는 쿠르드족이 많은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분리독립 또는 자치권을 요구하며 폭탄테러, 폭력시위 등을 벌여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이 됐다. PKK는 1984년 8월 15일 쿠르드 봉기를 선언했으며, 이 봉기는 1999년 9월 1일 PKK가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 봉기로 4만여 명이 숨졌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오잘란은 1999년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이스탄불 남서쪽 임랄리섬 감옥 독방에 26년째 수감된 상태다. 이 봉기를 이유로 튀르키예와 미국·유럽연합(EU) 등은 PKK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튀르키예 정부와 PKK는 2013년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2015년 파기됐다. 당시 오잘란은 옥중 서한으로 무력투쟁 종료를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각국 거주 쿠르드족마다 의견 달라…독립보다는 자치권 무게 = PKK는 지난 1일 친쿠르드 매체 ANF통신을 통해 “오잘란이 요구한 평화와 민주사회로 향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오늘부로 휴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앞서 오잘란은 지난달 27일 의회 내 친(親)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DEM)을 통해 “(PKK에) 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촉구한다. 이 촉구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PKK의 행보에도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이 멈출지는 미지수다. 특히 아사드 정권 축출 후 이슬람 무장단체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 점령한 시리아에서 중요한 변수로 쿠르드족이 떠올랐다. HTS에 도움을 준 튀르키예는 쿠르드족을 맹공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PKK와 활동하면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다. 현재 시리아의 동북부는 미국 지원을 받는 쿠르드 민병대(YPG)를 주축으로 하는 시리아 민주군(SDF)이 점령하고 있다. SDF는 “무장 해제는 PKK 측 사안”이라며 “시리아 내 분리독립 운동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각국에 있는 쿠르드족 간 입장이 달라 쿠르드 독립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독립보다는 자치권 확대를 목표로 삼을 것”이라며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모델을 다른 국가에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종혜 기자 ljh3@munhwa.com
이종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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