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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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5) 냄새

엄마 살냄새·연인의 향기 등
냄새는 세계를 간직하는 방식
보들레르 ‘이국향기’서 언급

나쁜 냄새 식별하며 가치 설정
암내로 집단 괴롭힘 당하기도

결국 향수 통해 나쁜 냄새 퇴치
몽테뉴 ‘에세’선 은폐수단 인식
쥐스킨트 ‘향수’ 인간운명 결정


정말 좋은 냄새가 있다. 엄마 냄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모든 불안한 일들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아빠의 냄새나 애인의 냄새일 것이다. 냄새는 오래 머물러온 방처럼 또는 늘 덮고 자는 이불처럼 나를 감싸며 아늑한 둥지를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성장이란 이 친숙한 냄새로부터 멀어지는 일을 견디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동물성과 거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김유동 역)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후각의 즐거움을 좇는 충동은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하등 생물에 대한 해묵은 동경으로서 주변 자연이나 대지나 진흙과 직접적으로 하나가 되려는 충동일 것이다.” 성장한 인간은 아이나 동물이 하듯 친숙한 냄새를 맡고 즐기기 위해 코를 들이대지 않는다. 동물성을 내쫓아 버린 문명 속에서는 냄새를 맡기 위해 타인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파괴하고 그 사람의 몸에 코를 대는 것은 깜짝 놀랄 만한 실례이며 자신의 경박함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귀여운 개들은 밖에서 숯불에 구운 고기를 먹고 온 날이면 우리 몸과 하나가 되려는 듯 코를 들이대고 떨어질 줄 모른다. 슬프게도 인간은 이 개의 즐거움을 금지당한 것이다. 체면 때문에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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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에게서 후각이 가지는 의미로부터 인간의 코는 완전히 이탈해 버렸다. 배설물의 냄새로 자기를 알리거나 새끼나 적을 감지하는 일을 인간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나쁜 냄새를 식별해 가며 냄새의 사회적 가치를 설정한다. 자연적인 냄새를 인간적인 영역 안에서 나쁘게 인지하는 경우는 가령 후루야 미노루(古谷實)의 만화 ‘이나중 탁구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허구적 창조물 가운데 냄새에 관한 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다나베는 모든 사람을 쓰러트릴 만한 암내를 가지고 있다. 그의 착한 성품과 대비되는 이 암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처럼 자연의 선물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지 ‘웃프게’ 보여준다. 인공적인 나쁜 냄새도 인간 세계를 뒤덮는다. 예를 들면 미국 작가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제이슨은 가솔린 냄새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 두통 때문에 자기가 운전하던 차를 더 이상 몰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당연히 살충제, 농약의 나쁜 냄새 같은 것도 동류에 속한다.

인간 사회 안에서 정체성을 가지게 된 자연적, 인공적 나쁜 냄새에 맞서서 인간은 무엇을 했는가? 이 존재는 향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냄새는, 싸구려 방향제 같은 것이 알려주듯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16세기의 문인 몽테뉴가 ‘에세’(심민화·최권행 역)에서 쓰고 있는 다음 구절을 읽어볼 수 있다. “억지로 만들어 낸 좋은 향기를 쓰는 사람들을 수상쩍게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쪽으로 무슨 타고난 결함이 있어 감추려 하는 것이려니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시인들은 ‘좋은 냄새가 난다는 건 악취가 난다는 것’이라는 멋진 구절을 남긴 것이다.” 인위적인 냄새를 가지고 인간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그뿐 아니라 인위적인 향기는 그 향기의 값어치를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숨겨진 악취를 가리켜 보이는 신호로 작용할 것이다.

잠깐 덧붙이면, 몽테뉴가 이렇게 향수에 대해 힐난하듯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인위적인 향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는 의사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게 향기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향기로 내 몸이 달라지고 향기에 따라 내 정신에 달리 작용하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 각광받고 있는 아로마 테라피에 대한 매우 선구적인 착상이 아닌가? 냄새는 정신적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몽테뉴는 간파했다.

보들레르
보들레르


나쁜 냄새에 맞서서 인위적으로 좋은 냄새를 만드는 것, 즉 진정한 향수를 제조하는 일은 인류의 과제였다. 진짜 향수는 마술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고 그 향수를 온몸으로 흡수한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다. 사람들이 향수에 대해 지니는 이런 꿈을 오늘날 우리는 아름다운 모델들이 등장하는 향수 광고에서 읽을 수 있다.

매우 도달하기 어려운 최상의 향기를 간직한 향수가 얼마나 마법과도 같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지에 대해 몇몇 소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구현하기 어려운 꿈의 향수는 유명한 화장품 기업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설 속에서 현실화한다. 예를 들어 쥐스킨트의 ‘향수’(강명순 역)가 있다. 지린내, 땀 냄새, 곰팡내, 도살장의 피 냄새 등등 온갖 악취를 평민부터 왕까지 피할 수 없었던 18세기 파리에서 한 향수 제조의 천재가 향기 하나로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유명한 소설을 제쳐 둔다면, 향수에 관한 가장 놀랍고 유쾌한 구절을 우리는 루슈디의 ‘피렌체의 여마법사’(송은주 역)에서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유럽에서 한 젊은이가 무굴 제국의 황제를 만나러 온다. 이 젊은이는 황제의 도시에 도착한 날 한 창녀와 가까워지는데, 그녀는 황제를 알현하기 위한 까다로운 길을 열어주는 마술과 같은 향수로 그를 치장해준다. “그녀는 그의 몸을 코를 위한 교향곡으로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향기를 뿜게 된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향수가 기적같이 그를 앞질러 가서 순조롭게 그의 길을 가도록 해주었다. 경비대는…그를 쫓아내는 대신, 일부러 도움을 주러 와 마치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 들은 양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놀랍게도 환영의 미소를 지었다. 경비대장은 심부름꾼을 보내 왕실 부관을 데려오게 했다. 호출을 받은 부관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와서는 방문자에게 다가갔는데,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와 새로운 향기가 공기 중에 확 퍼졌다. 경비대의 무딘 코에는 아주 미미한 향이었지만, 부관은 갑자기 처음 사랑에 빠졌던 소녀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코를 위한 교향곡”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연주될 것이다. 좋은 냄새는 이토록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좋은 향기를 지닌 이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만일 저 향기가 거짓된 표현이 아니라 예절의 표현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좋은 냄새를 어떻게든 만들고자 하는 인간이 그 좋은 냄새를 통해 가장 피하고자 하는 악취는 무엇일까? 바로 부패의 냄새, 그 가운데서도 시체 썩는 냄새일 것이다. 소설 ‘향수’의 다음 구절은 이를 잘 알려준다. “…몇몇 무덤이 위태롭게 무너져 버렸고, 그 결과 묘지에서 진동하는 악취에 참다못한 주민들이 단순한 항의 정도를 넘어서 진짜 폭동을 일으킨 후에야 비로소 묘지가 폐쇄되었다.”

그런데 정신에 스며들어 치유의 효과를 주는 좋은 향기만큼이나 저 시체 썩는 나쁜 냄새도 인간의 정신을 흥미롭게 건드린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김연경 역)에서 시체 썩는 냄새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모두에게 존경받아 왔던 조시마 장로가 죽는다. 그런데 그의 작은 몸은 너무도 빨리 부패해 당혹스러운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악취에서 신의 심판을 읽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인간에게 존경스러운 이 인물에 대한 신의 판단은 혹시 인간의 것과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심판은 인간의 심판과는 다르다는 것이지!…하느님이 일부러 계시의 손가락을 보이신 것이야.” 악취는 가히 신학적이다! 인간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오류의 정신이 자신의 본질이라는 듯 나쁜 냄새 속에서 신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쁜 냄새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내게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냄새는 우리가 세계를 간직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냄새에 민감했던 프루스트처럼 ‘이국 향기’에서 이렇게 쓴다. “그대 내음을 따라 매혹적인 고장으로 안내되어,/ 나는 본다, 바다의 파도에 흔들려 아직도 몹시 지쳐 있는/ 돛과 돛대 가득한 어느 항구를,”(윤영애 역) 연인의 내음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항구 전체가 가슴에 안겨 온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냄새를 통해서 어린 시절의 행복을 간직하며, 살에 남아 있는 냄새를 통해서 연인과의 사랑을 간직한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이나중 탁구부

이나중학교의 탁구부 부원 6명의 이야기를 그린 작가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1993년부터 4년간 연재됐고 1996년 제2회 고단샤 일반 부문에서 수상했다. 일본 괴짜 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작품 자체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사회 부적응, 왕따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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