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전 세계에 해적 주의보가 내려졌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151명으로 전년(119명) 대비 약 27% 증가했다. 해역별로는 아시아 해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해적 하면 무법자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해골 마크가 그려진 쌍뿔 모자, 섬뜩한 해골 깃발, 애꾸눈에다 손목에는 갈고리를 단 험악한 모습 등…
해적의 역사는 길다. 중세시대만 해도 해적들은 악행만 일삼는 불한당이 아니었다. 뛰어난 뱃사람이었다. 선주를 위해 일하거나 해군에 복무하는 것과 달리, 해적은 이익을 비교적 평등하게 나눠 가졌으므로 잘만 하면 부를 빨리 축적할 수 있었다. 특히 하층 계급의 뱃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해적은 글로벌 집단이었다. 소수 차별이나 인종 편견은 없었다. 백인이 다수인 해적단에서 선장으로 흑인이 뽑힌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해적들은 비록 사회와 격리돼 생활했지만 동료애와 협동심, 나름의 사회·윤리적 행동 규범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한 행동 규약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규약의 목적은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규약에는 도박, 여성 희롱, 싸움, 음주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됐다. 선장 선출이나 항로 변경, 공격과 같이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집단 전체의 표결로 정했다.
‘해적의 황금시대’(1690∼1730)에도 거칠고 무식하며 강도와 살인을 일삼는 패거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해적은 금과 은을 약탈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식민지 아메리카의 일상적인 무역선을 노렸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는 상선이나, 서아프리카에서 카리브해로 노예를 실어 나르고 다시 술과 설탕을 선적해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배들이 표적이 됐다. 전사한 해적의 미망인과 자녀는 동료 해적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포로들도 대부분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진정한’ 해적들은 해상 강도인 21세기 해적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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