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

지난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있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고성을 주고받은 논쟁 끝에 어떤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이 회담을 지켜보면서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힘이 약한 주권 국가의 운명이 제국들의 담판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불길한 신호들이다. 전 세계 패권을 쥐락펴락하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겐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다.

1947년 해방 정국 속에서 힘없는 나라의 건국을 위해 낮밤 없이 노력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어쩌면 오늘의 젤렌스키와 비슷한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지혜로웠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나 행정부 관료들과의 논쟁을 피하고 미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그는 그해 1월 14일 한 미국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진 미 군정의 무모한 좌우 합작의 본질을 공개했다. 그의 인터뷰가 라디오 방송을 타고 미국으로 중계되자 미국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깨닫고 미 행정부를 압박했다. 이승만이 목소리를 높인 게 아니라, 미국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에서도 공산주의 위협이 가시화하면서 미국 내 반공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되는 데 이승만의 호소는 분명히 기여했다.

이승만의 노련한 정치 감각은 1953년 휴전협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하루속히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과 영국에 맞서 이승만이 꺼낸 카드는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당시 반공포로 석방은 자유의 가치를 전 세계인에게 호소하면서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얻어낸,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협상 카드였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약소국과 대등한 조건에서 안보협정 조인에 성공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53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NP)은 고작 67달러, 우리보다 수치가 낮은 나라가 세상에 없다시피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니 전 세계 안보협약 가운데서 가장 불평등한(?) 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어느덧 한반도에서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여 년이다. 강대국들의 놀이터처럼 계속된 약탈과 침략의 역사가 끝나고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 체제가 안착된 것은 이승만이라는 탁월한 정치인의 존재를 빼놓곤 얘기할 수 없다. 이승만의 선물처럼 우리에게 안겨준 평화와 안보를 바탕으로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주권은 말로만 지켜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인의 한마디 말이 국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그에 의해 힘없는 약소국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젤렌스키의 모습을 보며 그 옛날 대한민국을 위해 동분서주 헌신했던 이승만의 모습을 본다.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부디 이제 더는 이 나라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비난하고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그는 현명했으며, 이승만의 원맨 플레이 덕분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그는 대한민국만을 생각한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가 꿈꾼 세상은 아직 온전히 오지 않았다.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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