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 해크먼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달 26일 뉴멕시코주 자택에서 아내, 반려견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아리송한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동참할 생각은 없다. 이 글은 분명 좋은 연기자였던 진 해크먼이란 배우를 추억하며, 그의 죽음을 뒤늦게라도 기리려는 애정 고백에 가깝다.

해크먼은 화려한 할리우드에서 지극히 평범한 비주류의 전형이었다. 세 번째 영화 ‘보니 앤드 클라이드’(1967)를 찍을 때 이미 서른 후반이었던 그는 주인공 클라이드(워런 비티)의 형을 연기했다. ‘에브리맨’(Everyman·보통 사람)이라 불리면서도 남들은 한 번을 받기 힘든 오스카상을 두 번 받은 명연기자는 처음부터 아저씨로 존재했던 셈이다.

영화 속 해크먼은 늘 외로운 남자였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1974)에서 도청 전문가로 분한 그는 편집증에 빠져 점점 고립된다. 영화의 마지막,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공포로 자신의 방 벽을 모두 뜯어낸 뒤 바닥에 주저앉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의 ‘단절’ 그 자체다. 제리 샤츠버그 감독의 ‘허수아비’(1973)에서 그는 중년 남성의 얼굴로, 꽃미남 알 파치노와 함께 청춘의 순간을 스크린에 남겼다. 세상에 혼자였던 두 남자가 만나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을 해크먼은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그는 집요한 형사이거나 고약한 악당이었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긴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프렌치 커넥션’(1971)에서 그가 연기한 지미 포파이 도일은 끝까지 범인을 잡아내리라 포효하는 다혈질 형사의 전형이다.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남우조연상)를 안긴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보안관 리틀 빌은 잔혹하고 악랄하다. 영화 속에서 그는 여성에겐 지독히도 인기가 없었다. 주인공에게 여성을 빼앗기거나(‘노웨이 아웃’), 모녀 꽃뱀의 표적(‘하트브레이커스’)이 되곤 했다.

해크먼의 괴팍한 겉모습엔 애정을 갈구하는 보통의 아저씨이자 할아버지가 가려져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열 테넌바움’(2001)에서 오랜 기간 가족을 방치한 고약한 아버지를 연기한 그는 죽음으로써 붕괴 직전이었던 가족을 한 데 불러 모은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동년배인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강렬하고 본능적이었으며 결코 거짓된 연기가 없었던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이정우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