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박서진 ‘남도 가는 길’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연기자 송강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영화 ‘넘버3’를 안 봐도 이 대사는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현정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버렸어.” 조용히 넘어가면 무탈했으련만 고지식한 부하가 구타를 유발한다. “임춘애입니다, 형님.” 권위에 도전한 대가는 혹독했다. 더구나 그날 수업(?)의 주제가 ‘헝그리’ ‘무데뽀’ 정신이었다.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쓸데없이 토 달면 배신이야 배신이란 말을 유행어로 만든 송강호는 그해(1997)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1991년 극단 연우무대 입단 오디션에서 ‘자네는 왜 배우가 되려는가’ 물었을 때 ‘저는 나중에 칸 영화제에서 상 받을 겁니다’ 이랬을 리 없다. ‘저는 무대에서 살다가 무대에서 죽고 싶습니다’ 어렴풋이 그때를 기억하는 심사관은 지금 배신감을 느낄까. 그럴 리 없다. 가난한 연극배우는 무대를 떠난 게 아니라 무대를 넓힌 것이니까. 배신이 아니라 배양이고 배출이다.
방송가에선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을 ‘시청률 높으면 그만’이라고 해석한다. 끝이 안 보이는 트로트 오디션 행진에 ‘해도 해도 너무해’ 이러면서도 제작진이 디미는 숫자 앞에 광고주는 고분고분해지는 게 작금의 풍속화다. 출연자 시각에선 임(팬들)도 보고 뽕(수입)도 따는 기회니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저쪽에서 낙엽 쓸고 돈 줍는데 빗자루(마이크) 안 들 사람 누가 있겠는가.
‘현역가왕2’(MBN)에서 톱7을 뽑았는데 절반 이상이 국악 전공자다. 신승태(단국대 국악과 졸업, 2019년 경기소리 명창부 대상), 김준수(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졸업, 2021년 KBS 국악대상 대상), 최수호(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휴학), 강문경(중앙대 국악학과 중퇴) 이럴 때 국악계의 반응이 궁금하다. 저들은 국악을 버린 자들인가 아니면 국악을 살릴 자들인가. ‘낄끼빠빠’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이라면 저들에겐 ‘지지배배’(지킬 건 지키고 배울 건 배운다)를 덕목으로 제안하고 싶다. 시나브로 국악의 향기를 퍼트린다면 K-뮤직의 저변도 확대되지 않겠는가.
오디션이 많다 보니 여기선 탈락인데 저기선 우승하는 일도 생긴다. ‘미스터 트롯2’(TV조선)에선 찬밥신세였다가 ‘현역가왕2’(MBN)에선 왕좌에 오른 가수가 박서진이다. 처음 일부 시청자에겐 요란한 각설이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우아하게 왕관을 쓴 모습으로 바뀌었으니 그를 응원한 팬들은 고진감래의 선물을 답례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신곡 미션에서 박서진은 ‘남도 가는 길’(김병걸 작사, 정의송 작곡)을 불렀다. ‘안동역에서’ ‘찬찬찬’의 작사가 김병걸은 ‘현대시학’으로 데뷔(1976)한 시인이기도 하다. 문단에선 그에게 ‘당신은 왜 시를 버리고 노래 가사를 짓느냐’ 물을 수도 있다. 영화배우가 연극무대를 떠난 게 아니고 가수가 국악을 등진 게 아니듯 그도 시를 버린 게 아니다. 아마도 그는 부두에 묶인 시를 바다로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으리라. ‘가도 가도 끝 모를 지평선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육자배기 한 장단 남도 가는 길 대들지 못한 세상 어디 간들 다르리 휘어지고 꺾이는 인간사 누군들 어쩌리.’(‘남도 가는 길’)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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