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을 들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윤성희 작가.   박윤슬 기자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을 들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윤성희 작가. 박윤슬 기자


■ ‘느리게 가는 마음’ 출간 윤성희

이모가 1년전 쓴 편지 찾아 여행
마주친 사람들과 에피소드 담아
“난 맛집 옆 구멍가게 같은 작가”


유머를 단단히 붙잡은 채 희망을 그리는 소설가 윤성희가 4년 만에 7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창비)으로 돌아왔다.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지난 6일 만난 윤 작가는 스스로 “맛집으로 이름난 대박집 옆, 작은 구멍가게 같은 작가”라고 소개했다. 문예지를 만드는 한국문학 편집자들 사이에서 언제든 보장된 작품으로 청탁 희망작가 1, 2순위를 다투는 27년 차 소설가의 지나친 겸손이지만 그의 말처럼 알아서, 친숙해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저력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이번 소설집에도 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비범한 설정 하나 없이 평범하다. 게다가 거대한 갈등 없이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작가가 소설집의 테마와 같은 작품으로 꼽은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이모가 1년 전 쓴 편지를 찾아오기 위해 나선다. ‘느린 우체통’에 부쳐져 곧 배달되지만 이모는 연인과 이미 헤어졌고, 연인은 다른 사람과 최근 결혼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작은 행운을 발견한다. 원칙을 어기고 편지 찾기를 허락하는 우체국 직원, 추억 가득한 물품을 잔뜩 채워 달리는 만물 트럭 기사 등이다. 아주 사소한 대화와 작은 발견을 놓치지 않고 꺼내보이는 작가의 소설에 ‘도파민’이란 없는 듯 잔잔하다.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대사 한 줄로 드러나는 게 좀 부끄러워요. 특히 단편이라면 그저 침대맡에 두고 쪼개 읽는 동안 일렁임을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소설은 소소한 농담을 이어가며 감정의 일렁임을 부추긴다. 책을 펴면 문장의 ‘행 갈이’ 없이 단단하게 채워진 문단에서부터 요즘 소설 문법과의 차이가 확연하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의 흐름대로 쓴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래서∼, 그래서∼(‘타입 캡슐’)’ 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작품의 결정적 한 문장을 사진 찍어 SNS에 올리는 ‘텍스트 힙’ 시대에 역행하는 방식이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쓰인 작품이 모여있음에도 팬데믹, 참사와 같은 시대적 주제에 골몰하거나 페미니즘, 퀴어, 과학소설(SF)과 같은 장르 문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도 최근 경향과는 다른 점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회의 분위기를 빠르게 흡수해 작품에 녹이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도 있었어요.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그대로인데 하루아침에 다른 소설을 쓸 수는 없죠. 언젠가 사람 자체가 바뀌면 소설도 바뀔 텐데 그때의 모습을 궁금해하며 일단 제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그러나 윤 작가의 소설에는 이미 충분한 위로가 담겨 있다. 항암을 이어가는 엄마의 빈자리에서 혼자 끓는 열을 감당하고(‘느리게 가는 마음’)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며(‘자장가’) 암에 걸려 돌아오는(‘여름엔 참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만큼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다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삶의 고난을 무릅쓴 채 명랑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치유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문학이 해야 할 일은 불행 이후를 상상하는 거예요. 힘든 조건을 인정한 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모교인 서울예대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수시·정시를 망라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지원자가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문학의 위기, ‘포스트 한강’에 대한 생각도 고백했다. “소설을 써 온 27년 동안 계속 위기래요. 최근에 급부상한 건 아니죠. 포스트 한강도 찾는다고 찾아지지 않고요. 이미 잘하고 있으니 꾸준히 넓은 폭의 서사를 써 나가면 됩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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