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통 큰 거래’ 준비할 때다[시평]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트럼프-젤렌스키 설전 충격적
가치동맹도 정의도 뒷전 밀려
MAGA 넘어 ‘막가’가 뉴노멀

한미동맹은 印太전략 린치핀
자유의방패 연합훈련 진행 중
自强自衛하며 윈윈 길 찾아야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국제외교 관례상 그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두 정상 간 고성이 오간 끝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쫓겨나다시피 백악관을 빠져나왔다. 이런 결과가 벌어진 건 양국 간 첨예한 입장 차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전쟁 비용을 광물로 보상받으려 했다. 반면, 젤렌스키는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으로서 정의로운 평화와 미국의 확실한 안전보장 조치를 원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종전협상 추진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NATO) 동맹인 유럽마저 배제했다. 이뿐 아니라 침략국 러시아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 없는 안보 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치 아래 트럼프의 행보는 ‘마가(MAGA)’라기보다는 ‘막가’라는 표현에 더 부합하는 모습이다. 지금 트럼프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더는 정의도 가치도 동맹도 없이 오직 국익만 존재하는, 그야말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국제질서가 우리 목전에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방식이 만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비록 우리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미국의 국익 여하에 따라 동맹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침략국인 러시아의 푸틴 편을 들 듯 여차하면 침략자이자 불법 핵 개발로 우리를 협박하는 북한 편을 들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실제 트럼프는 “부자 나라 한국을 우리가 왜 지켜줘야 하는가” “주한미군은 당장 철수시키고 싶다” “한미연합연습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심지어는 ‘미친 짓’이라는 언급조차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트럼프 1기 당시이던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3대 한미연합연습을 중단한 전례도 있다. 지난 1월 20일 취임 이후 한국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온 트럼프는 지난 4일 첫 의회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며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다른 방식으로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콕 집어 언급했다. 이로써 한국을 향한 방위비 분담금 폭탄이 날아들 것이란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지금 상황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 지레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70년 넘는 혈맹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 트럼프의 공식은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은 미국이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인·태 전략의 린치핀이다.

이는 트럼프가 지난해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한국의 조선 분야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월 20일 취임식 당일에도 트럼프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통화 때 사령관이 트럼프를 주한미군 기지에 ‘오시라’고 하자 ‘그리하겠노라’고 했다. 트럼프 2.0 시대 출범 이후 첫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은 확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지난 2일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에 이어 미 핵추진항모 칼빈슨호가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기항했다. 10일부터는 2025년 전반기 한미연합연습인 자유의 방패(FS)가 열흘 동안 진행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트럼프 2.0시대에도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확고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동맹은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온 국민이 자강자위(自强自衛) 하기 위해 더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한미 양국이 윈윈 하는 통 큰 협상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