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사대문’ 떠나는 기업들

불황 장기화 속 임대료 치솟아
대형 오피스는 月11억원 훌쩍
“저렴한 외곽으로” 속속 이삿짐

지난해 4분기 공실률 9.9%
한분기만에 3%P 이상 늘어나
옮겼거나 이전할 대기업 15곳


서울 광화문·종로·중구 등 이른바 ‘사대문 안’ 오피스 공실률이 한 분기 만에 3%포인트 이상 증가해 10% 가까이로 올랐다. 이는 실물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와중에 오피스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대기업들마저 저렴한 지역으로 본사 등을 앞다퉈 옮기기 시작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이후 호황기를 구가했던 상황과 대비된다.

11일 부동산 투자 자문회사 알투코리아(R2Korea)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대형(연면적 3만3000㎡ 이상) 오피스 공실률은 전 분기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4.9%로, 2020년 4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공실률 증가가 특히 두드러진 지역은 광화문·종로·중구 등 도심권역(CBD·Central Business District)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6.8%였던 CBD의 공실률은 4분기 9.9%로 치솟았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무실 임대료가 치솟자 비용 절감을 위해 사옥 이전을 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CBD 대형 오피스의 월평균 임대료는 2020년 4분기 평(3.3㎡)당 10만3700원에서 2024년 4분기 11만1000원으로 7.0% 올랐다. 대형 오피스 최소 기준인 연면적 3만3000㎡를 사용할 경우 월 임대료가 11억 원을 훌쩍 넘어간다.

코로나19 대유행 종료 이후 한국 기업들이 앞다퉈 재택근무를 해제하면서 사무실 수요는 늘어났지만, 경기 침체 여파 등으로 도심권 신규 오피스 공급은 부진했던 수급 불균형이 임대료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대문 안에서 외곽 지역으로 사옥 이전을 앞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운영사 측에서 임대료를 30% 넘게 올려달라고 했다”며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재계약보다는 임대료가 더 저렴한 지역으로 옮기자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알투코리아가 집계한 주요 업무지구에서 이전했거나 이전 예정인 대기업은 15군데에 달한다. 11번가는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경기 광명 유플래닛타워로 본사를 이전했다. SK에코플랜트는 2027년 하반기 중으로 종로구 수송스퀘어에서 영등포구 양평동 4가 오피스로 이전을 준비 중이다. 세븐일레븐 운영사인 코리아세븐은 중구 시그니처 빌딩에서 강동구 이스트센트럴타워로 지난해 이사했고, SSG닷컴도 올 2월 역삼 센터필드에서 KB영등포타워로 이사를 마쳤다. 임직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직원은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집을 마련했는데 갑자기 사옥을 이전한다니 눈앞이 캄캄하다”며 “이직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직원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의 탈출 러시와 주요 지역의 오피스 공급 확대가 중·장기적으로 공실률 증가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최대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 코리아에 따르면 앞으로 7년 동안 서울 대형 오피스 물량은 기존보다 45% 더 늘어날 예정이다.

김영주·이예린 기자
김영주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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