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hy - 왜 고용세습 온상됐나
‘백지 평정표’로 당락 뒤바꾸고
비리수법 파일 만들어 서로 공유
지자체 공무원 선관위 전출땐
‘단체장의 동의 필요’ 규정 무시
“감사원의 직무감찰 위헌” 결정
감시 사각속 관련법 통과 난관
“김씨 성(姓)에 강화 출신 중앙선관위 직원이면, 누구겠어.”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사무총장이 사실상 꽂아넣은 면접위원 A 씨가 면접 중 “경력채용 지원자 (B 씨의) 부친이 누구냐”는 또 다른 면접위원 질문에 한 답변이다. 이 발언은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경력채용 면접점수 평정에도 영향을 미쳐 아들이 합격하게 됐다고 검찰이 판단, 김 전 사무총장을 지난해 12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사무총장은 모집공고부터 면접위원 선정, 자격요건 변경 등 채용 전반을 챙겼다. 경력공채 이후에도 관사 비용까지 김 전 사무총장은 지위를 악용, 아들을 살뜰하게 챙긴 사실도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지연·근무연으로 얽혀 ‘채용비리’ 온상 된 선관위, 부정채용 수법도 공유 = 지연과 근무연으로 똘똘 뭉친 이 같은 행태로, 선관위는 채용비리 복마전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12일 감사원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 2022년 1월 전남선관위는 경력채용을 하면서 면접위원에게 사실상 ‘백지 평정표’를 요구했다. 사실상 당시 사무차장이던 박찬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딸의 채용을 위해서였다. 박 전 사무총장은 광주에서 선관위 공무원 경력을 시작, 광주선관위 관리과장 등을 역임했었다. 전남선관위 직원들은 부정채용 수법을 ‘★서류전형+면접 팁.txt’라는 파일로 공유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편법으로 (심사위원들의) 서명 부분만 미리 받음” “조정이 필요한 경우 C 과장, D 과장 평정표 수정” 등의 부정채용 수법이 족보처럼 담겨 있었다. 해당 파일이 문제될 것을 알자, 인사 부서 상급자는 ‘편법’ 등의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며 “너도 (문서를) 수정했으니 공범”이라고 했다고 한다.
선관위의 채용비리는 최고위층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는 아니었다. 경남선관위 한 과장은 본인 근무처에 자녀가 지원했다고 채용담당자에게 알리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문의했다. 채용담당자에게 딸의 지원서류도 검토해 달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딸이 전출동의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경남선관위에 경력채용이 되자, 과장은 채용담당자에게 “(딸이) 못 올 뻔한 걸 올 수 있도록 해줘 고맙다”며 꿀 2병을 선물했다. 관련 의혹이 포함된 익명의 투서도 있었지만, 선관위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자체 감사를 종결했다.
감사원의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감사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선관위는 특혜채용 의혹을 받는 고위직 간부 자녀 등 11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국회 등을 통한 외부 통제를 받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용비리의 원인을 제도 미비 탓으로만 볼 수 없어, 조직 내 뿌리 깊게 박힌 ‘제 식구 챙기기’ 관행을 스스로 고칠 수 있을지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선관위는 왜 ‘가족회사’가 됐나…진흙탕에 눈감은 내부자에 외부 통제도 안 먹혔다 = 선관위 채용비리 원인은 1차적으로 내부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검찰 수사 결과 인천시선관위는 제출한 응시원서만 보고도, 김 전 사무총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이에 상임위원과 사무처장, 총무과장 등이 모여 공정성 담보를 위해 외부 면접위원을 선임할지 논의했다. 하지만 외부위원 선임 필요성은 논의 수준에만 그쳤고, 결과적으로 내부위원으로만 면접위원을 꾸렸다. 채용 과정에서 내부 입김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커녕 채용비리에 스스로 눈을 감은 꼴이다. 경력채용을 앞두고 중앙선관위 인사담당자는 경북선관위 인사담당자에게 고위직 자녀가 경력채용에 응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받고, “자식 등 지인을 데려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경력채용을 실시하면 진흙탕이 튀길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채용 과정에서 외부 통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선관위는 지난 2021년 첫 경력채용 면접시험을 실시하며 내부위원 4명과 외부위원 6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을 구성했다. 하지만 내부위원에게 평정표를 사후 수정할 것을 고려, 평정란은 연필로 작성하고 서명란에는 서명하지 말고 제출하게 했다. 결국 서울시선관위는 내부위원 평정표 점수를 임의로 변경하고, 집계표를 재작성해 일부 지원자의 순위가 변경되도록 해 채용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훼손시켰다. 외부위원을 공정한 채용 구색 맞추기용 들러리로 전락시킨 셈이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도 입맛대로 해석하기 일쑤였다. 정부 법령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선관위로 데려가려면 해당 지자체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인사담당자는 시·도선관위 인사담당자에게 “선관위는 헌법기관이고 규칙 제정권도 있으니까 ‘선관위공무원규칙’에 ‘공무원임용시험령’을 준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더라도 선거업무로 인해 여의치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임의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임용시험령을 위반하더라도 (지자체장의) 전출 부동의자를 소속기관에서 의원면직하게 한 후 그냥 임용하도록 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전출 동의 제도는 선관위 채용비리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들에게 소속 지자체로부터 전출 동의를 받아오게 하고, 동의를 받아오지 못한 지원자는 이를 구실로 탈락시켰다. 뽑고 싶은 지원자는 전출 동의를 받지 못했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데려왔다. 선관위는 아예 입맛대로 해석하기 좋게 규정을 손보기도 했다.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가 ‘선관위공무원규칙’ 제2조 4항을 손본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기존 해당 조항은 ‘규칙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선관위가 지난 2023년 이를 ‘준용할 수 있다’로 개정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외부 감사도 받지 않게 된 선관위의 ‘무소불위’ 우려 급등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 감찰이 위헌”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선관위를 감시할 외부 수단은 사라진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를 감사하는 특별감사관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지만, 법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법원장·지원장이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는 것도 선관위를 통제 안 되는 기관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현직 헌법재판관 8명 중 6명이 법원 판사 시절,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선관위의 채용비리를 포함한 관리 부실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내부 통제와 외부 감시를 강화하는 측면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을 쓰는 선관위 같은 공룡 조직이 공적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관련기사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