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한국정치학회장)가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민주주의 기본 규범인 ‘관용과 자제’의 중요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한국정치학회장)가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민주주의 기본 규범인 ‘관용과 자제’의 중요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현안 인터뷰
한국정치학회 이끄는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관용·자제’ 잃고 극단 대결
보수·진보 합의 못할 부분 많아
존중 못한다면 그냥 무시하라

국회 떠난 ‘광장 정치’ 진단
직접 민주주의 실현 장점이지만
열성·소수의 목소리 과대 포장

87체제 한계… 개헌 적기
대통령 4년 중임제·결선제 등
여러 차례 원포인트 개헌 추천



국내 최대 정치학 학술 단체인 한국정치학회를 이끄는 김범수(55)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기본 규범인 ‘관용과 자제’를 잃은 채 극단 대결을 벌이는 데 대해 “‘비나인 니글렉트’(benign neglect·호의적 무시)조차 없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 개념에 대해 “싫은 걸 무시하는 태도로, 자유주의 사상의 기본이자‘최소한도의 관용’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당들이 차이나 이견에 대한 존중·인정이나, 호의적 무시조차 없이 끊임없이 상대를 악마화하며 ‘차이 삭제’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치 16세기 서방교회의 종교개혁 이전 상황처럼, 차이에 대한 존중도, 인정도, 호의적 무시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프레임을 형성, 정치권이 끊임없이 반목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87체제’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대방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데, 개헌을 통한 정치제도의 문제를 해결해야 제2의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정당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개헌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합의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표현처럼,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말고,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 결선제 등 반드시 필요한 정치 제도 개선에 대해 최대한 합의해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대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우리 사회가 관용과 자제를 잃고 사실상의 내전사회로 치닫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크게 정치제도의 문제와 정치문화의 문제로 살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의 정치제도가 문제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선거 모두 ‘제로섬 게임’을 벌인다. 상대를 이겨야만 되고 제거해야만 하는 정치문화다. 나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고, 상대방의 손해는 나의 이익이라는 구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남의 것을 뺏어와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권이 ‘땅따먹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 관용과 자제의 문화, 절제의 미덕이 생길 수 없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사회문화나, 이를 부추기는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비나인 니글렉트라는 자유주의의 기본이 되는 개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자유주의의 최소한도로, 싫은 것은 무시하는 것이다. 이게 쉬워 보이는데, 사실 굉장히 어려운 태도다. 가령 나의 신념에 따라 동성애가 싫고 동성끼리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모습이 꺼려지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무시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존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여하거나 없애지 않는 것이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면 무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정도를 하고 있느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타인에 대한 관용이 없고 더 나아가 상대를 악마화한다. 어떤 입장이 조금 더 타당하고 덜 타당한지, 정치적 타협 지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게 아니라, 선과 악의 문제로 대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여겼다. 그는 국가가 나서 이를 컨트롤하는 것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밀이 대안으로 제시한 게 ‘소셜 컨트롤’(social control) 즉, 사회적인 통제다. 국가가 아니라 언론과 학계, 시민사회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 자정작용을 벌여 ‘자유주의적 관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탄핵 공세를 벌이는 더불어민주당,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결적 1 대 1 구도’도 완화할 수 있나.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은 비나인 니글렉트를 넘어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이견을 조정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현재 정치권은 나와 다른 것을 다르다 생각하는 게 아니라 틀리다고 생각한다. 가령, 보수와 진보 사이 아무리 얘기해도 합의할 수 없는 게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면 그냥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 대화하면 된다. 서로 간에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틀리다며 공격하는 데 무슨 타협이 가능하겠는가. 적대적 정치적 문화는 기본적으로 여기에서 생기는 것 같다.”

―정당정치가 퇴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당원 중심 정치를 해왔다. 당원 중심으로 당 대표를 선출하고 공천도 당원들 의사를 많이 반영하는 시스템을 유지했다. 이해가 가는 흐름이지만,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당원들은 기본적으로 극렬 지지자다. 정치인들은 이 지지자들에게 잘 보여야만 공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정치인은 어떤 행동을 할까.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채널에서 ‘매운맛 멘트’를 날려야 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공격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당원들이 알아주고 대중 인지도도 높아진다. 합리적 중도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설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여권 정치인들을 생각해 보자. 만약, 당 대표 선출 등을 완전 개방형 국민참여 경선으로 하면, 이들이 반탄집회에 나오고 매운맛 멘트들을 지속적으로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야 정치인 다수가 광장에 나오고 있다. 국회를 떠나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다. 국회라는 제도화된 정치 공간을 전면 부정하는 것 아닌가.

“광장정치의 장점은 직접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소수의 목소리가 과대 포장된다는 점이다. 거리에 나가는 사람은 대개 열성 지지자인 경우가 많다. 양극단 지지자다. 이곳에서 중도적 목소리는 설 공간이 없다. 중도의 목소리나,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양극단의 목소리가 과대포장되고 이에 편승해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평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나는 위헌·위법적이라 생각한다. 절차적 문제가 있다. 계엄 선포를 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를 해야 하는데 미진한 점이 드러났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무회의에 대해 ‘형식적·실체적 흠결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또 계엄을 하더라도 입법부 권한은 침해하지 못하는데, 이를 침해한 포고령 1호 자체가 위헌으로 볼 수 있다. 군대를 동원해 국회 의결을 하지 못하도록 시도하는 등 권한 침해를 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가 개헌이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개 공감을 하는 것 같다.

“개헌은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1987년의 헌정 질서가 40년이 지나 여러 현실과 안 맞는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다. 87년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개헌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그렇기에 개헌과 관련해 양당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게 원포인트 개헌에 불과하더라도 최대한 합의해 개헌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거론되는 게 4년 중임제와 대통령 결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고, 그게 현실적이라 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기회에 개헌 논의가 있는 것들을 모두 반영하자 하면 절대 개헌 못 한다고 본다. 원포인트 개헌을 여러 번 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개헌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의견은.

“틀린 말은 아니다. 훌륭한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 안에서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느냐는 결국 사람에게 달렸다. 지도자의 성향, 인품, 능력, 스타일 등이 모두 고려돼야 하는 요소다. 그러나 정치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결국 그 사람의 기질을 규제하는 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정치학회는 올해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인가.

“학회가 정치제도 개혁과 정치문화 개선을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논쟁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은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 중요한 것은 개헌이라 보고, 유력 정치인들을 모셔서 각종 학술대회를 개최할 생각이다. 만약,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된다면 주요 대선후보를 초청해 개헌에 대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물어볼 계획이다.”

손기은·이시영 기자



“국민은 포용·통합 리더십 원해… 선거 이겼다면 상대 진영도 기용해야”

■ 비상계엄 이후 리더십은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은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치 상황에 대해 “내전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한 진영갈등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계엄 이후의 정당 대표나 대통령은 절대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을 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포용력을 갖춘 인사”라며 “나와 다른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넉넉히 귀 기울이는 모습을 원할 것”이라며 “생각이 다른 쪽도 모두 우리 국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통합 작업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여권 기준으로 보면, ‘배신자 프레임’에 갇힌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같은 분도 포용해 함께 뜻을 모으는 정치인을 원하지 않겠느냐”며 “국민들은 여야를 떠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중도의 목소리도 품는 지도자의 모습을 바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열린 한국정치학회장 선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사소한 선거일 수 있지만, 지난해 한국정치학회장 선거가 엄청 치열했는데 나는 선거에 이긴 후 상대 진영의 인사를 총무이사로 기용했다”며 “권한이 많은 자리에 내 사람 대신 상대 진영 사람을 쓰니, 학회 사람들이 나에게 되레 좋은 평을 많이 하더라”고 떠올렸다. 김 교수는 “정치권에서도 최소한 이 정도 여유는 갖고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게 결국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의 모습이고, 국민은 이 같은 정치에 크게 반응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및 총무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한국정치사상학회 총무이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부장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제54대 한국정치학회장 △저서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손기은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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