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3월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동결키로 한 데 이어 주요 대학이 미복귀 학생에 대해 제적 등 강경 대응 원칙을 밝혔다. 새 학기,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내년에 3개 학년을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제적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3월 복귀 전제조건은 협박이라고 맞서고 있다. 완전한 증원 백지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회 등 무리한 요구를 재차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2026학년도 증원 제로라며 한 걸음 물러서자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아예 내년에 의대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까지 했다.
학부모는 분노하고, 환자 단체는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를 믿고 피해와 고통을 감수하며 기다렸는데, 결국 의사에게 백기를 들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매번 강경 대응을 천명하다 상황에 밀려 양보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원칙 대응을 주문하다 신입생마저 수업 거부에 동참할 기미를 보이자 전격 동결을 결정했다.
다급한 마음은 알겠으나 의료개혁이라는 틀에서 논의돼야 할 의대 정원이 원칙도, 계획도 없이 1년 넘게 온갖 피해를 참아온 국민에게는 양해도 구하지 않고 덜컥 제시됐다. 무리한 2000명 증원이라는 첫 단추는 잘못 채워졌지만 어렵더라도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 런, 3분 진료 등을 해결해보자며 기다린 끝에 2020년 사태가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2020년 의료계가 의약분업에 반대해 휴진하자 정부는 의대 정원을 줄였고 공공 의대 설립을 포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자문이었던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는 상호 신뢰, 호혜성의 규범, 협력적 네트워크가 작동해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을 말하며 사회적 자본이 없는 파편화된 사회를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라는 흥미로운 용어로 설명했다. 말 그대로 모두 흩어져 자기 혼자 볼링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의정 갈등이 1년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우리 상황을 설명해 준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긴 시간 동안 당사자들이 한 번도 한자리에 앉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공동의 룰도, 철학도, 협력 네트워크도 없이 듣거나 말거나 자기 말만 해왔다. 의료계 내에서조차 입장에 따라 제각각이다. 파편화된 끼리끼리의 의견은 언제나 더 ‘강경’으로 치닫기 쉽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신뢰’이다. 상대가 호의적이거나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우리에겐 없었다. 의료계는 대놓고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는 의료계를 믿지 않고, 국민은 의사와 정부 모두를 신뢰하지 않는다.
새 학기 의대에서 일어날 변화를 계기로 ‘나 홀로 볼링’을 접고 ‘모두가 함께하는 링’에 올라야 한다. 이 게임은 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올림픽 게임이 아니다.
우선, 정부는 원칙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현재 가능한 ‘모두의 링’으로는 의료계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의대 정원을 논의할 법적 기구인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추계위를 구성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국회 본회의 처리와 추계위 구성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살려내야 한다. 의료계는 여전히 추계위가 심의권이 아닌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지만, 의료계 의견을 대폭 반영해 의료계 인사가 추계위 위원의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다급하게 이뤄진 결정이지만 2026학년도 정원도 동결됐다. 국민이 피해를 감수한 지난 1년 동안 상급 종합병원의 전환도 이뤄지고, 진료지원(PA) 간호사도 합법화되고, 필수수가 조정도 이뤄졌다.
전공의는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의대생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완전 항복 선언을 받겠다며 ‘모두의 링’에 오르지 않으면 결국 돌아오는 건 ‘기권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