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이 책
시간이 지나면
마리나 루이스 글·그림│피카주니어

알람이 울리면 엄마는 우당탕 아침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뛰고 자동차는 빵빵댄다. 어른들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언제나 부족하다. 그러나 소녀에게 시간은 너무 느리게 흐르고 언제나 흘러넘친다. 시간이 빨리 지나면 생일을 여러 번 축하할 수 있고, 쉬는 날에서 다음 쉬는 날로 곧장 갈 수도 있을 텐데.
지루해하던 소녀는 불현듯 발자국을 남기는 달팽이와 집을 짜는 거미를 본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뿌리를 길게 내렸지”라는 숲의 속삭임과, “곧 봄이 올 거야” 하는 겨울 땅의 소곤거림과, “자랄 시간이 필요했단다”라는 동굴의 중얼거림을 듣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곧 사랑하는 시간이다.
어떤 아이는 싹을 빨리 틔우고 어떤 아이는 천천히 틔운다. 나는 아직 새싹이 되지 못한 아이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네가 빨리 싹을 틔우지 않아도 키가 크지 않아도 멈추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캄캄한 땅속에서 무한히 자라고 있다는 걸 알아. 모두 기다리다 떠나도 나는 네가 준비가 되었을 때 그 순간을 축복해주기 위해 여기에 있어. 아이야, 너를 믿고 너의 때를 준비하렴. 나는 그때 너를 두 팔 벌려 한없는 기쁨으로 맞이하려 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기다림과 신뢰만이 내가 아동문학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48쪽, 1만6000원.
신수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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