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백창민 지음│한겨레출판


‘책 덕후’에게 도서관은 언제 가도 즐거운 곳이다. 신간을 비롯해 이제는 절판돼 구할 수 없는 책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보다 더한 ‘도서관 덕후’다. 전국 각지로 ‘도서관 여행’을 다니며 도서관에 얽힌 역사를 소개한다. 책 보관소, 그 이상으로 도서관이 가진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조선인’이 세운 가장 오래된 공공도서관은 어디일까. 일제강점기에 여러 공공도서관이 문을 열었지만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 중에서는 1920년 윤익선이 세운 ‘경성도서관’이 가장 오래됐다. 이후에는 이범승이 운영을 맡게 됐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인이 설립한 도서관을 폐쇄하고 억압했다. 조선의 계몽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범승에게는 도서관 부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그가 조선과 일본의 ‘일선융합’을 주장하며 도서관을 설립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근대 도서관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이범승의 업적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도서관의 선구자 격인 윤익선과 이범승 모두 친일파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씁쓸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도서관의 역사만 설명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도서관이 ‘정치적인 장소’임을 강조한다. 특히 민주화 시대 때 그랬다. 유신 체제 아래 대학도서관은 부마항쟁의 시발점이 됐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그 불길이 경남 마산까지 옮겨붙었다. 경남대 도서관 앞에도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촉발된 시위가 고작 열흘 뒤 10·26으로 이어졌다.

대학도서관은 어떻게 항쟁의 시작점이 됐을까. 서슬 퍼런 감시가 일상적이던 시기,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후 1990년대까지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한 대학도서관들은 ‘민주화의 무대’로 기능했다. 저자는 이 시대에 도서관이 ‘민주주의의 보루’였다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도서관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서는 누구였는지, 남북한 중 어디가 더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다. 국회도서관은 왜 존재하는지 당연한 사실에도 의문을 던진다. 도서관과 관련된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게 권한다. 540쪽, 2만5000원.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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