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맥주 광고를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맥주를 담은 병이나 잔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이는 맥주의 낮은 온도 때문에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된 것이니 이를 보면 누구나 차고 시원한 맥주를 떠올리게 된다. 녹아든 이산화탄소의 톡 쏘는 맛은 물론 차가운 온도가 느끼게 해 주는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우리로서는 당연하게 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 냉장고에서 나와 술꾼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친 맥주가 있다. 시간이 지나며 응결된 물방울이 다 말라버렸고 맥주의 온도는 주변의 온도와 같아져 버렸다. 이런 상태의 맥주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는 무심결에 이러한 맥주를 식은 맥주라고 부른다. 그런데 과연 맞는 말일까? 식는다는 표현은 뜨겁거나 따뜻한 것의 온도가 내려갔을 때 쓰는 것인데 이건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바뀐 것이 아닌가?
음식은 먹기에 적당한 온도가 정해져 있다. 국밥은 뜨끈하게 먹어야 하지만 냉면은 차갑게 먹어야 한다. 생으로 먹는 음식은 당연히 차가워야 하지만 열을 가해 조리하는 음식은 가능하면 따뜻할 때 먹는 것이 좋다. 동물의 ‘먹이’에서 인간의 ‘음식’으로 전이된 결정적인 계기가 불의 사용이니 음식은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식은 밥, 미지근해진 국 등으로 음식을 먹기에 최적의 시간이 지난 것을 표현한다.
더운 날씨에 음식을 차갑게 하는 것은 냉장 기술이 필요하니 차갑게 한 음식은 비교적 최근에야 접하게 되었다. 따뜻한 국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차가운 맥주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모두 결국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 상태가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가워야 한다. 역사가 거꾸로 흐를 때는 머리는 차가워야 하고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 이런 시대에 거꾸로 가는 식은 밥이나 식은 맥주는 결코 달갑지 않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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