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00일 곳곳에서 특이 현상 탄핵심판 늦어지고 여론도 변화 李 과거-현재-미래 리스크 증폭
尹 복귀해도 정상 국정 불가능 진짜 계엄 불가피 상황 올 수도 여권 반탄·찬탄 분열하면 공멸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30대에도 사회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다. 기성세대가 학창 시절 흔히 듣던 얘기인데, 대학가에선 시시비비를 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민주·진보 세력이 압도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많은 대학에서 벌어지고, 탄핵 찬성 집회와 각축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2030 세대 보수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최루탄과 투석전으로 대학 시절을 보냈던 기성세대에겐 자식 세대의 이런 현상은 미스터리로 보인다. 민주화 투쟁 세대의 부모와 대학생 자녀가 탄핵 찬·반으로 생각이 갈려 별거한다는 어느 지인의 사연이 예삿일 같지 않다.
12·3 계엄 사태가 100일을 넘기면서 이런 특이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지지율 미스터리다. 야당과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이 폭등하고, 여당과 윤 대통령 지지율은 폭락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계엄은 잘못 60∼70% > 윤 대통령 탄핵 55∼65% > 정권 교체 45∼55% > 이 대표 지지 30∼40%’ 순서다. 이 대표 선호도는 3년 전 대선 득표율에도 못 미친다. 윤 대통령 잘못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이지만,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반대한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이미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된 과거 위험, 이 대표는 이제부터 피해야 할 미래 위험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 대표 리스크는 과거·현재·미래를 망라한다. 과거 리스크는 사법 리스크이다.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의 문제로 8개 사건·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오는 26일)가 코앞이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만큼 의원직 상실형(벌금 100만 원 이상)을 피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리스크는 신뢰 리스크이다. 이 대표는 기업 주도 성장, 부부 상속세 폐지 등으로 보수·중도층을 공략하면서 기본사회·노란봉투법·상법 등 반기업 정책도 쏟아낸다. “오른쪽도 보고 왼쪽도 보는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뜨거운 얼음’ 같은 모순적 궤변이다. 당내에서도 비명-검찰 내통설을 주장하면서 통합을 외치는 이중성을 보인다.
미래 리스크는 독재 리스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직까지 차지하면 행정·입법·사법권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비명횡사 공천, 자신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 정략적 무분별 탄핵소추 등을 지켜본 국민이 민주주의를 가장한 ‘연성(軟性) 독재’를 우려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바이마르공화국을 붕괴시킨 아돌프 히틀러도 1933년 헌법과 다수결을 이용해 독재를 구축했다. 참여민주주의와 광장도 적극 활용했다. 히틀러가 총리가 된 날(1월 30일)로부터, 독재의 출발로 보는 수권법(Enabling Act) 통과(3월 23일)까지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계속 하락해 계엄 직전엔 20% 수준, 직후엔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는데, 최근엔 40% 안팎이다. 이것을 계엄 정당성 증거로 착각해선 안 된다. 이재명 포비아의 반사 효과일 뿐이다. 만에 하나, 대통령직에 복귀해도 계엄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 야당의 타도 투쟁은 극렬해질 것이고, 그런 야당과 권력을 공유하는 거국 체제와 제2의 비상계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야당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담화에서 야당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세력’, 국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규정했다. 다음 선거에서 이겨야 이런 주장도 추인받는 셈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뒤 실시된 8년 전 대선에서 보수·중도 진영이 세 갈래(홍준표·안철수·유승민)로 분열돼 전체 득표(52%)에선 앞섰지만, 야당(문재인 41%)에 패했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3년 전 가까스로 당선된 것은 안철수·이준석과 연대했기에 가능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여당과 결별하면서, 찬탄·반탄 적대감을 털어버리고 다시 뭉쳐 승리해줄 것을 당부하는 게 첫 단추다. 부모가 오래 병석에 계시면, 자식들이 덜 슬퍼하도록 정을 다 떼고 돌아가시려고 한다고 위로한다. 지금 윤 대통령과 여당은 그런 ‘정 떼기’에라도 나서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