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이자 독문학자인 김주연(84) 시인은 내년 등단 60주년을 맞는다. 이를 앞두고 그는 비평집 ‘포스트휴먼과 문학’과 시집 ‘강원도의 눈’(이상 문학과지성사)을 동시에 펴냈다.
김 시인은 서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하고 문예지 ‘문학’에 평론이 당선되며 1966년 등단했다. 김현, 김병익, 김치수와 함께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해 국내 문학 평론을 이끌었으며 문단에서는 ‘4K’로 불리기도 했다. 약 30년 동안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포스트휴먼과 문학’은 김주연이 지난 5년 동안 발표한 글과 강연록 등 29편을 엮은 비평집이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 작가의의 작품을 분석한 ‘2024 한국 노벨문학상 받다’도 눈길을 끈다. 책은 특히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으로 예술 행위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이른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에 문학의 역할과 기능을 논한다.
1부에서는 기술 진보 사회를 맞닥뜨린 문학의 현실을 점검한다. 저자는 "문학이 꺼져가는 등불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며 "울음과 아픔은 기계화된 환상이 생산할 수 없는 능력이며, 이것이 비인간 시대의 문학"이라고 강조한다. 2부에서 저자는 문학의 소외가 심화하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과거 문화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황순원이나 이어령과 같은 문인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마지막 3부에서는 박이도, 이시영, 강문숙, 금동원, 강문정. 다섯 시인의 서정시를 김 시인만의 시선을 분석한다. 1·2부가 숲을 보듯 현시대 문학의 위치와 가야 할 길을 다룬다면 3부는 나무를 보듯 개별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에서 "이즈음의 세상은 문학이 무엇인지 그야말로 콘셉트 자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 같은 한탄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지 않고 마지막 문장에 "그럼에도 문학이여, 영원하시라"고 썼다.
시집 ‘강원도의 눈’에 54편의 시가 묶였다. 모든 시가 미발표 시라는 점에서 새롭고 독특하다. 시인은 본적지가 강원도이기 때문인지 서울에서 출생했음에도 강원도가 고향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시집의 머리말인 ‘자서(自序)’에서는 "내 정신에 한 반점으로도 기억이 없건만 / 왜 엊그제까지 살던 고향처럼 다정할까"라며 자문한다. 시집은 ‘강원도’, ‘경포 호수’, ‘강원도의 풀’, ‘평창군 대화면’, ‘나 밖의 나’‘로 구성된 다섯 편의 강원도 연작 시로 강원도 지역을 향한 애정을 묘사했다.
또 ‘인류세(人類世)’, ‘학문인가 마법인가’, ‘어릿광대가 된 평론가’, ‘알 수 없네’와 같은 수록시에서는 평론가로서의 고충과 어려움이 드러난다. ‘민주주의’, ‘디아스포라’, ‘중독’ 등의 작품에서는 역사와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노시인의 통찰이 번뜩인다.
"굽실거리고 악수하던 너 / 며칠 뒤 안하무인의 구둣발이 요란하다 / 복지와 봉사를 약속하던 너 // 돈도 땅도 아파트도 모조리 제 주머니에 쓸어 넣는다 / 가렴주구와 옥반가효가 / 민주주의로 이름이 바뀌었구나, 불쌍한 민주주의야" (시 ‘민주주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