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잘나가던 美 경제 ‘R의 공포’
물가 우려에 성장 전망치 급락
여론 악화, 트럼프 정부 부심

오락가락 관세, 동맹 균열 심각
美 언론 “80년 세계질서 흔든다”
위험한 관세전쟁, 모두에 피해


미국발(發) 관세전쟁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철강·알루미늄 25% 관세가 신호탄이다. 내달 2일에는 국가별 상계관세와 자동차 관세 인상이 예고돼 있다. 예외없는 관세 인상에 특히, 서방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캐나다·멕시코 등 인접국부터 오랜 동맹인 유럽, 호주 등까지 잇따라 반발한다. 미국과 밀월 관계를 자신하던 일본 역시 가장 민감한 쌀 관세 문제를 백악관에서 제기하자, 당혹해 한다. 내부에선 안보와 경제를 연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술에 말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 필요한 조선·원전 등의 협력 강화가 관세 폭풍을 일부라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길 기대하는 정도다.

트럼프 행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이 반발을 더 키운다. 국가 관계에서 첨예한 이슈인 관세가 하루에도 신설-유예-폐기 또는 보복 인상 등으로 수시로 바뀐다. 이에 맞서 유럽 등 해당국들도 보복 관세 부과-취소를 왔다 갔다 한다. 세계가 대혼란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내 역풍이다. 관세 인상의 후폭풍 우려에 미국의 올 성장 전망치가 뚝 떨어졌다. 골드만삭스는 종전 2.4%에서 1.7%, 모건스탠리는 1.9%에서 1.5%로 크게 내렸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1분기 전망치는 아예 -2.4%다. 경기침체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미국 성장률은 2.8%로 주요 7개국(G7) 중 최고였다. 잘나가던 경제에 돌연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닥쳤다. 미 경제를 살린다는 관세 인상이 되레 물가 상승을 초래해 경제를 해치는 셈이다. 가뜩이나 비상인 한국 등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미국 경제는 소비 비중이 거의 70%나 된다. 물가 상승은 이런 소비를 위축시켜 성장에 치명적이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행히 2.8%로 전망치보다 낮았다. 이 덕에 폭락 증시도 진정됐다. 그러나 관세 인상의 영향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미 소비자들의 물가 불안이 심각한 이유다. 지난 12일 로이터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관세 인상으로 식료품과 기타 일상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화당 지지자도 60%(민주당 지지자는 90%)나 됐다. CNN 조사에서 성인 61%가 관세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 연방준비위는 이미 당분간 추가 금리 인하가 없다고 시사했다.

미국 내 여론 악화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해져 테슬라 자동차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것이 그 상징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여론 진화에 부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테슬라 차를 시승·구매하고, 백악관을 임시 전시장으로 차렸던 정도다. 그렇지만 문제가 이 정도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관세전쟁이 가속화할 내달부터는 물가 상승 부메랑에 가계·자영업자·기업의 반발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해외의 역풍이 거센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둘도 없는 동맹인 유럽의 반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변화다. 영국의 침묵 속에서 프랑스도 독일도 반발한다. 심지어 독일 언론에선 관세 예외를 두지 않는 미국을 향해 ‘이제 동맹 아닌 적’이라는 섬뜩한 반감까지 드러낸다. 안보 무임승차는 안 된다는 미국의 주장에 유럽이 호응하는 정도를 넘어, 미국을 뺀 독자 핵우산 등으로 각자 길이 갈리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간에 틈이 벌어지고, 나토(NATO)가 흔들리는 상황은 자유 진영의 파괴를 부를 뿐이다. 실제 미 언론에선 두 달도 안 된 트럼프 행정부가 80년 동안 애써 구축한 미 중심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언론계 전반의 비우호적인 정서를 고려하더라도 이례적으로 혹독한 비판이다.

미국발 관세전쟁이 미 경제를 자해한다는 우려를 낳고, 동맹의 균열을 부르는 형국이다. 관세 인상에 따른 비용과 희생이 너무 크다.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청구서가 아니다. 커지는 미 안팎의 역풍은 공멸로 향해선 안 된다는 경고다. 일방적인 관세전쟁은 모두에 피해를 줄 뿐이다. 4년 뒤엔 미국이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미 언론의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 위험 국가인 중국·러시아가 세계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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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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