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 8월 말, 태조 이성계는 풍수의 명당 서울로의 천도를 결정했다. 조선 최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태조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적극 찬성으로 돌아섰고, 풍수 도시 서울 도시계획의 책임을 맡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9월 초, 경복궁을 서울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보이도록 만든 도시계획도를 그려 태조에게 바쳤고, 그 결과물의 핵심을 우리는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 모습은 이렇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과 회색빛의 북악산(342.5m)이 거대하고, 화강암 보현봉(714m)의 뾰족한 정상이 솟아올랐으며, 아래로는 광화문과 근정전 등의 전각 지붕이 층층이 연속된다.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 3단계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명당 경복궁 풍경’이다. 세계적으로 이색적이고 특별한 풍경인데,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면 왜 이색적이고 특별한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풍수가 처음으로 발생한 중국이든 유럽이든 어디든 좋으니 산 아래 궁궐이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 찾지 못할 것이다. 없으니까. 그러면 왜 없을까?

①현존하는 가장 높고 웅장한 전통 건축물인 이집트의 쿠푸 대피라미드(146m)를 북악산 아래에 만들었다면 높고 웅장하게 보였을까? ②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 중의 하나인 인도의 타지마할을 북악산 아래에 만들었다면 아름답게 보였을까? ③산 밑에 궁궐의 성벽을 만들었다면 방어하기 쉬웠을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긍정적으로 대답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산 밑에 궁궐을 짓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은 높고 멋지며 장대한 북악산 밑에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지었다. 그래서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의 3단계 풍경이 만들어졌고, 이런 경관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처음 보는 이색적이고 특별한 궁궐 풍경일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