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들이 충북 음성군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다.
단원들이 충북 음성군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다.


청계산 옛골 출발해 용인, 죽산, 음성 거쳐 충주까지 154km 걸어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6일 차다. 오늘은 걷기를 하루 쉬고 충주시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문화 탐방을 했다. 지난 닷새 동안 청계산 옛골 용인 죽산 음성을 거쳐 이곳 충주까지 154km를 걸어왔다. 조선 시대 때에는 충주에서 배를 타도 서울까지 15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매일 25-40km 를 걷는 강행군이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몸이 하루하루 적응해 가니 신기하다.

여러 회원이 일일 걷기에 참가하며 다양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오니 양국 단원들이 크게 격려를 받는다. 일본 측 엔도 야스오 대표는 간식을 먹을 때마다 걱정이 태산이다. 대한해협에 빠져 죽고 싶다고 하는데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최근 일본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한국의 1인당 GDP가 2023년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으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일본 젊은 남성들도 한국 젊은이들의 패션 트렌드를 모방하고 있으니 옛날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이것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오늘의 모습이다.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간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서울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해야 할 정도로 반대투쟁은 극심했다. 박정희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산업화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100년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였다.

이번에 일본인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그들의 세련된 매너, 양보하는 자세, 그리고 지구 환경 보전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 시 60대 초반의 일본 어느 여성 단원에게 일본에서의 근황을 물으니 요즘은 슈카츠(終活) 즉 죽을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아깝지만 물건을 버리는 일이다. 너무 이른 준비가 아니냐고 말하니 몸이 건강하고 머리가 맑은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독신에다 형제자매도 없다. 지진 쓰나미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사생관이 우리와 다르다. 죽음에 대해 비교적 초연한 편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걷기 마니아인 어느 한국 단원이 우리나라는 전국이 공사판에다 쓰레기장이라는 말을 했다. 과연 걸어보니 어디나 쓰레기가 넘쳐난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해서 범국민 캠페인을 벌였으면 좋겠다. 88올림픽 이후 변화된 우리의 화장실 문화를 이제 일본인들이 오히려 부러워한다.

1960년대 후반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 건설 시 박태준은 서울의 호텔 사우나 수준의 목욕탕을 공장 곳곳에 만들며 목욕문화 확산에 힘썼다. 자기 몸이 깨끗해야 주위의 지저분함이 눈에 들어온다고 그는 말했다. 목욕문화의 보급은 세계수준의 제품과 최고의 생산성으로 나타났다.

양반 땅 충청도는 역시 달랐다. 충주시 신니면 어느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나이 드신 아주머니 두 분이 하시는데 인정이 넘친다. 윤기가 흐르는 갓 지은 뜨거운 밥에 김치찌개가 환상적이었다. 이번 길을 걸으며 먹은 음식 중 최고다. 떠나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내년에도 또 오라고 했다.

충주시 충청감영 앞에서 고령 박씨 종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충주시 충청감영 앞에서 고령 박씨 종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충주시 대소원면을 지나는데 면장 이하 직원들이 나와 생수와 드링크제를 단원에게 나누어주며 환영해주었다. 도착 지점인 충주관 공원에는 이곳 출신으로 제2차 조선통신사의 부사를 역임한 고령 박씨 박재 선생의 후손들이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주시 관계자도 나와 이곳 특산물인 비싼 사과를 4박스나 증정해주었고 고령박씨 종친들은 저녁을 대접해주었다.

숙소에 돌아와 일본 측 엔도 대표와 숙소 근처 식당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젊은 남녀 한 커플이 우리가 하는 일본어를 듣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식당 주인 아들과 일본에 유학 가서 사귄 오카야마(岡山) 출신 일본 여성이다. 두 사람은 올해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오카야마는 세토 내해에 면한 도시로 조선통신사가 들렸던 지역이다. 이 집 가족들과 함께 식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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