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으로 제주 4·3 사건의 참상을 그려낸 소설가 현기영(84·사진)이 자전적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한길사)을 펴냈다. 원고를 마지막으로 수정하던 지난해 12월 작가는 비상계엄 사태와 ‘기적’처럼 광장에 등장한 젊은이들을 마주하고, 그들이 ‘소비향락적 사고’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또한 “(젊은 세대가) 분노와 열광을 뒤섞어 시위를 장엄하고 유쾌한 엔터테인먼트로 만들고 있다”며 “젊은이들을 흉봤던 내가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책에는 과거 국가권력의 폭력을 기억한 노 작가로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제주 4·3 사건을 다루는 ‘작가 현기영’뿐 아니라 당시 제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목격자·생존자 현기영’이 담겨 있다. 먼저 고향 제주에 대해서는 “사랑과 증오, 분노와 좌절의 상반된 느낌을 느끼게 하는 퍽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좀처럼 떠나지 않던 우울증과 이 나이에도 이따금 찾아오는 말더듬증도 그 참혹한 유년기에 기인했다”고 고백한다.

그로 인해 ‘모주꾼’이 돼버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죽은 자들을 위해 증언한다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어린 나이에 살아남은 나는 세상을 그 소년의 시선으로 응시해야 했다”는 말 속에 오늘날 광장의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시대의 증언을 부탁하는 노 작가의 바람이 묻어난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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