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연구직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적용하는 ‘반도체특별법’이 이번에도 야당 반대로 국회 의결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현재 1회당 3개월에서 6개월로, 최대 1년까지 늘리기로 지침을 개정했다. 대신 근로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특별연장근로는 주 52시간의 예외를 적용받아 주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과거에도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적용 예외가 포함돼야 한다는 게 정부 기본 입장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 등의 반대로 입법이 지연되자 특별연장근로라는 대책을 만든 것이다. 기업으로선 이런 대책이라도 있어야겠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해당 기업은 정부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사후적으로는 건강검진까지 해야 한다.
반도체특별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국민 상당수가 반도체 생산공정이 갖는 매우 특이한 속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반도체의 크기는 매우 작지만, 그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상당히 길다. 웨이퍼를 생산공정에 투입해서 최종 반도체가 만들어지기까지 짧게는 수주에서 길게는 5개월 이상 걸린다.
따라서, 제품 생산 후 이상이 발견되면 관련 분야 연구진들은 설계 및 생산공정에 대한 문제에 낮밤 없이 매달려 해결책을 최대한 빨리 찾아야 2차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연구인력은 물론 생산 현장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국가에 산재한 반도체 장비업체와 매우 신속히 협업해야 한다. 제품 설계 및 생산공정 수정 단계에서는 시간을 하루라도 단축하는 게 중요한 만큼 주당 근무시간을 따질 여유가 전혀 없다.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 1위인 대만의 TSMC, 로직칩 설계 및 생산을 주도하는 미국의 인텔과 AMD,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의 마이크론 등 우리의 경쟁국에서는 근로시간에 대한 아무런 규제 없이 몰입하는 일을 지난 수십 년 간 지속해 오고 있다. 치열한 세계 경쟁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만 주 52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해도 주 64시간이라는 규제를 받고 있다.
미국의 AMD, 마이크론, 대만의 TSMC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몇 배 넘게 올랐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는 9만 원대에서 5만 원대로 폭락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두 자릿수가 무너져 현재 겨우 9% 정도에 불과하다.
반도체특별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입법을 하는가? 심지어 중소·벤처 기업조차도 주 52시간 규제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추가 인력을 채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중소기업은 52시간 규제가 인력난 악화의 원인이다. 초과근무를 통해 추가 소득을 벌충해야 하는 근로자들 역시 퇴근 이후에 다른 부업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창업 초기에 출퇴근 개념도 없이 24시간 몰입해서 대기업을 이겨야 하는 벤처기업들도 52시간 규제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다. 정책 입안자들의 심사숙고가 절박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