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합의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동안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소득대체율을 두고 국민의힘은 43%, 더불어민주당은 44%를 주장하며 대립했다. 지난 14일 민주당이 국민의힘 인상안을 전격 수용하기로 함으로써 이번 주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열렸다.
야당이 소득대체율 43%안(案)을 받으면서 부대조건으로 제시한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군·출산 크레디트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급 확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계획에 포함돼 있던 것이어서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이번 모수개혁과 함께 추후 논의하기로 했던 구조개혁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연금개혁특위 구성을 두고 줄다리기 중이어서 또 당리당략으로 연금개혁이 무산되진 않을지 우려된다.
여야가 거리를 좁힌 이번 연금개혁안에 대해 재정안정 주장 측이나 소득보장 주장 측이 각자 불만을 갖고 부정적 견해를 쏟아낸다. 그러나 일방이 만족할 수 있는 안이라면 다른 일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 될 것은 불문가지라고 할 때, 이번 연금개혁 방안은 극단적인 양방의 입장 무게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 개혁 방안이 지난해 5월, 제21대 국회 마지막에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와 똑같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 방안 외에는 다른 합의점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55년 국민연금 기금 소진을 2071년까지 늦출 수 있게 된다. 기금운용수익률을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가정했던 4.5%보다 1%p 더 높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지난 36년간(1988∼2024년) 기금운용수익률 연평균이 6.82%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궁극적으로 현재의 20세 청년 가입자가 90세 될 때까지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향후 보험료율도 좀 더 높여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의 조정도 필요하지만, 기금운용에 따라 국민의 부담을 덜 수도 있다.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에 노후소득보장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수개혁과 함께 구조개혁도 필요하다. 기초연금은 2025년 기준 예산 27조 원으로 65세 이상 노인 약 736만 명에게 지급하고 있으나, 노인빈곤율은 38.2%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에 있어 노인빈곤율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한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라 보험료율 기준으로 소득의 8.33%를 기업이 부담하는 퇴직급여 제도의 경우, 퇴직연금 가입자는 대상자의 50% 수준이고 연금수급 비율은 10%에 불과해 노후소득 보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또,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도 재정 안정화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자동조정장치도 검토해야 한다.
국회는 구조개혁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할 예정이다. 모수개혁 없이 구조개혁 없고, 구조개혁은 모수개혁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번 연금개혁안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한시바삐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연금개혁이 늦어지면 날마다 885억 원의 재정적자가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