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민의 정치카페 - 이재명의 정치관
李 “체포동의안 부결 호소는 반대파 색출 위한 것”…‘해프닝’ 아닌 정적 겨냥한 ‘기획상품’
평소 “정치보복 없다” 발언의 진정성 의문… 집권 땐 ‘배신자 가만 안 둔다’ 경고한 것

◇일파만파
이 대표가 지난 5일 친야·좌파 성향의 유튜브 ‘매불쇼’에서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발언 요지는 두 개다. 하나, 검찰이 2023년 당시 백현동 특혜·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과 관련해 법원에 청구했던 구속영장이 당내 반대파인 비명 그룹과 짜고 한 짓이며, 증거는 없지만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 즉 정적들의 이재명 축출을 위한 ‘비명-검찰 내통설’이다.
둘, 국회로 넘어온 법원의 체포동의안 처리 요구와 관련해 통 크게 “가결해도 좋다”라고 할 경우 친명이든 비명이든 부담 없이 가결 표를 던질 것이어서 진짜 반대파를 가리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배신자’들을 손쉽게 색출·단죄할 요량으로 부결을 호소했었다는 것. 이른바 ‘배신자 색출 기획설’이다.
비명 쪽은 이 대표의 발언에 반발하며 맹렬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비명 좌장 격으로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는 “이 대표가 엄청난 발언을 한 것”이라며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참고 지내는 비명계도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비명횡사 수난을 겪었다가 최근 이 대표와 회동해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며 통합에 협력하기로 했던 박용진 전 의원은 “또다시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친명 측은 이 대표의 발언이 ‘해프닝’이라며 파문 확산 막기에 급급했다. 원조 친명 김영진 의원은 “유튜브라는 공간에서 가볍게 했던 얘기인데 그것이 과하게 해석되고 평가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고 밝혔다.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쨌든 하지 말았어야 하고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지만, 이 대표가 상처를 주려는 건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이것 때문에 서운하거나 상처받은 의원님들이 계신다면 제가 대신 사과할 용의도 있다”고도 했다. 이 대표의 ‘비명-검찰 내통설’, 그리고 ‘배신자 색출 기획설’은 과연 해프닝이었을까.

◇해프닝 아니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특권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고, 2022년 대선 토론회에서도 강조했고, 대선 공약집에도 넣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가 임박하자 입장과 태도가 확 바뀌었다. 이 대표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되던 2023년 8월 31일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리고 체포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날짜가 9월 21일로 결정되자 하루 전인 9월 20일 민주당 의원들에게 호소한다. “검찰 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이 대표와 나눴던 대화를 복기하면서 그 답이 떠올랐다. 그와 만난 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주일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이 대표의 제안으로 저녁을 같이하게 됐고, 서울 시내의 중식당에서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시점에 물었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대선 공약 아니었나요. 왜 뒤집었습니까.”
이 대표가 답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때가 제겐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저는 제가 체포동의안 반대(부결) 투표를 요구해도 가결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러 반대 투표를 해달라고 했어요. 왜 그랬냐. 짝퉁인 거죠. 찬성(가결)하라고 했다면 반대파(비명 그룹)가 다 숨어 버려요. 내가 체포동의안 처리에 찬성하라고 하는 순간 (전체 찬성표 속에) 다 숨어버리지 않겠어요. 적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죠. 그래서 부결을 주문했던 거고, 그랬음에도 가결 표를 던진 반대파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기자가 다시 물었다. “반대파를 드러낸다…그것이 결국 22대 총선 때 비명횡사로 연결된 거군요.” 이 대표가 말했다. “내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지지자들이 당시 누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는지 다 찾아내더군요.”
◇왜 그랬을까
기자는 이 대표로부터 “정치보복은 안 한다”는 정치관을 수차례 들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쳐 대선 주자로 각인되면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보복은 없다고 강조했다. 소년공 시절부터 온갖 풍상을 겪은 삶의 역정, 정치 외곽에서 중원으로 진격해온 ‘황야의 일필랑’ 같은 이미지, 문재인-윤석열 정권을 이어오며 계속된 검·경 수사로부터 형성된 극도의 배타성 등이 그의 집권 시 정치보복이 자행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했던 게 사실이다.
경기지사 시절인 2020년 11월 만났을 때 이 대표는 ‘구렁텅이 자산론’을 폈다. “제가 집권하면 문재인이나 친문(친문재인)들을 적폐청산한다고 다 잡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구렁텅이’도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권력을 잡는다 해도 그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정치보복 같은 그런 건 안 합니다.”
지난해 말 저녁 자리에서는 여야 공생론을 토대로 한 정치관을 드러냈다. “음지와 양지는 그 양이 똑같은 거라서 싫어하는 사람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늘 드는 생각이 정치를 좀 즐겁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거예요. 각자의 몫이 있잖아요. 역할이 잠깐 바뀔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완전히 제거해보려고 하니까 서로 너무 힘들어요. 야당도 정치적으로 몫이 있는 거고 역할도 있는 거고 하는 건데, 서로 막 죽이겠다 제거하겠다 그런 거 하지 말고, 역할을 좀 나누고 같이 먹고 살자 이렇게 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세상도 좋아지고 평안해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매불쇼 발언으로 이 모든 말은 허언이 됐다. 이 대표가 하필 지금 시점에 평지풍파를 불러올 게 뻔한 메시지를 낸 것은 당 안팎 정적들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곧 조기 대선이 있을 것이고 집권하면 반대세력을 제거하겠다는.
◇후폭풍
이 대표의 매불쇼 발언은 ‘해프닝’이 아니라 오래 구상한 ‘기획상품’이었다. ‘비명-검찰 내통설’과 ‘배신자 색출 기획설’은 “정치보복 없다”는 말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그 같은 구상이 이미 22대 총선 반년 전부터 진행됐다는 건 충격적이다. 그런 지도자와 ‘이재명은 민주당의 아버지’라 추앙하는 세력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정권마저 갖는 것을 걱정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비명횡사’는 지난해 22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친명 지도부 그룹이 주도해 반명·비명 등 반대파를 공천에서 대거 배제·낙천한 것. 이를 통해 민주당은 일사불란한 친명 단일대오를 구축하게 됨.
‘체포동의안’은 검찰이 2023년 9월 18일 백현동 특혜 등과 관련해 이재명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이 국회에 체포 적부의 처리를 요구한 것. 21일 국회에서 가결 처리됐으나 27일 법원이 기각.
■ 세줄 요약
일파만파 :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명-검찰 내통’ 발언 충격파가 거셈. 이 말은 22대 총선이 치러지기 반년 전 이미 이 대표가 정적들을 겨냥한 ‘비명횡사’를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것을 자인한 발언으로 읽혀져.
해프닝 아니었다 : 李는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던 이유에 대해 기자에게 “적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고, 부결을 주문했음에도 가결 표를 던진 반대파가 다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 매불쇼 발언이 해프닝이 아니었던 것.
왜 그랬을까 : ‘비명횡사’ 기획·구상은 “정치보복은 없다”고 거듭 밝혀온 말의 진정성을 훼손. 이 대표의 메시지는 당 안팎 정적들을 겨냥한 것. 곧 조기 대선이 있을 것이며 집권하면 반대세력을 제거하겠다는 경고임.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