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각지서 미지의 식재료 수소문
드라마와 달리 고독할 틈 없어
이노가시라 고로 씨는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이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수입상으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 남성. 그에게서 개성을 꼽으라 한다면 눈과 코로 식당을 고른다는 것이다. 고로 씨는 꾸밈새를 자세하게 보고 냄새를 맡으면서 식당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한다. 맛집 검색, 후기 평점 따위는 참고할 일이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그의 식탁 위에는 음식만 올라가 있다. 고로 씨가 식사를 마치면 방송도 끝나는, 회차당 30분 분량의 단조로운 이야기가 13년째 방영되고 있다.
이번에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19일 개봉·사진)라는 영화로 나왔다. 일본 안팎에서 ‘고로 상’이라는 애칭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松重豊)가 연출에 각본까지 맡았다. 1983년 배우로 데뷔한 마쓰시게의 첫 연출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크린에서 만난 고로 씨는 전혀 고독하지 않아 보인다. 드라마에서 그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시간을 채우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옛 친구의 늙은 아버지가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국물을 또 맛보고 싶다는 부탁을 받는 것으로 여정이 시작된다. 이 노인은 요리의 이름은커녕 식재료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가족끼리만 알던 별칭으로 부르던 요리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고로 씨는 무리한 부탁을 덜컥 받아든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한국을 거쳐 일본에 돌아온다. 국적, 성별을 막론하고 만난 이들에게 미지의 식재료를 수소문한다. 게다가 죽을 고비까지 넘어야 하는 숨 가쁜 ‘오디세이’에서 고독을 즐길 틈은 없다. 고독하지 않은 ‘고독한 미식가’. 드라마 애청자에게 특히 더 어색할 것 같다. 그러나 고로 씨는 드라마에서 미뤄뒀던 질문을 영화에 와서야 하고 있었다. 고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말이다. 단절과 고독은 다를 텐데,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이 돼버린 게 아닐까. ‘고독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품은 듯한 질문이 110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흐른다.
극 중 단절을 상징하는 인물인 라멘 가게 주인장은 배우 오다기리 조(小田切讓)가 연기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장사 의욕을 잃고 라멘 접시를 죄다 깨버렸고 아내까지 한국으로 떠나보냈다. 그 자신은 고독에 빠져 있는 줄 착각하는 것 같지만, 그건 그저 단절일 뿐이라고, 고로 씨가 슬쩍 깨우쳐준다. 그리고 다시 일으켜준다. 물론 음식과 식당에 관해 이야기하는 고로 씨만의 방식으로 해낸다.
사실 고로 씨는 고독 속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둔 적이 없다. 식당의 안과 밖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음식을 느끼는 다른 손님의 표정과 목소리, 주인장이 재료를 손질하고 접시를 닦는 모습까지 유심히 관찰해 왔다. 말로 내뱉지 않았을 뿐이다. 그 소감은 지난 13년간 고스란히 방백을 통해 시청자에게도 전달돼왔다. “이 식당은 주인이 관리를 잘했는지 정문부터 느낌이 좋군” “저 손님의 표정을 보니 메뉴 선정이 흡족한가 봐”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은 뭘까” 등등. 따뜻한 고독이라고 할 수 있는 고로 씨의 목소리가 여전하고도 새로운 작품이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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