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hat - 연예인 CF ‘위약금의 세계’
연예활동 중단·제품 이미지 훼손
사회적 물의도 ‘계약 위반’ 적시
과거 일이면 책임 묻기 어려워
서예지는 모델료 절반만 반환
김수현, 15개 광고모델로 활동
개런티 105억원 받았다 추정
윤리적 비난 피하기 힘들지만
법처벌 없을땐 위약금 안낼듯
배우 김수현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그가 지난달 숨진 배우 김새론과 미성년자 시절부터 교제했다는 주장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빅 브랜드의 CF 모델을 맡고 있는 그가 200억 원이 넘는 위약금을 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광고 모델 계약을 할 때, 연예인의 잘못으로 모델 활동이 불가능해질 경우 발생하는 위약금 조항을 삽입하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억’ 소리 나는 몸값과 비례해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위약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위약금은 무엇인가
위약금(違約金)은 배상에 대해 규정한 민법 제398조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약정을 위반했을 경우 상대방 혹은 제3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뜻한다. 합의한 채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금전을 지급해야 한다는 약속이다.
통상적으로 광고 모델 혹은 드라마·영화 출연 계약을 할 때 양측은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 안에는 범법 행위를 비롯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연예 활동이 불가능해지거나 해당 기업의 이미지가 손상됐을 때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받은 원금의 2∼3배 정도가 평균치다. 최근에는 그 항목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교폭력, 가스라이팅 등 최근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 사안을 일일이 명시하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법조문 안에 포함되는 살인·강도·강간과 같은 범법 행위 이외의 사례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계약서 안에 이를 명확히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을 요구할 때는 계약서의 해석이 중요하다. 정확한 범죄 행위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고, ‘사회적 물의’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범법 행위라면 당연히 사회적 물의에 포함되지만, 도덕적·도의적 잘못과 책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모델을 맡고 있는 제품의 이미지에 해를 끼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광고주 입장에서는 분명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명백한 범법 행위라 보기 어려울 때는 위약금을 물기보다는 광고 모델료를 돌려주는 선에서 계약 관계를 종료한다. 만약 10억 원을 받고 모델로 활동 중인데, 6개월가량 지난 시점에 도덕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나머지 6개월에 해당되는 5억 원을 반환한 후 계약을 파기하는 식이다. 실제로 다수 CF에 출연하던 유명 연예인 A는 과거 협박 사건의 피해자였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자 광고주의 요청으로 모델료를 일부 돌려주고 계약을 마무리한 적이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다. 통상 2025년 1월에 1년 계약을 맺었다면, 계약 기간에 해당되는 2025년 1∼12월 사이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 발생한 사안이 모델 활동 기간 중 뒤늦게 논란으로 확대된 것까지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아울러 광고주 입장에서도 유명 연예인과 소송전을 치르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광고 에이전트들은 입을 모은다. 한 중견 광고기획자(AE)는 “민사로 진행되는 손해배상 소송은 3심까지 가려면 통상 2∼3년이 소요된다. 그 과정이 일일이 기사화되면 기업에도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고, 변호사 비용도 상당히 투입되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소속사 측과 원만히 합의해 빨리 계약 관계를 마무리한 후 부정적 이슈를 지우려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연예인 위약금 소송 판례는
공교롭게도 김수현의 소속사 골드메달리스트에 과거 몸담았던 배우 서예지가 2021년 학교폭력 가해자였고 전(前) 연인을 가스라이팅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광고주로부터 피소된 사례가 있다. 유한건강생활은 2020년 7월 서예지와 건강 기능성 유산균 제품에 대한 광고모델 계약을 하고 소속사에 모델료 4억5000만 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진 이후 서예지가 ‘품위유지 약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며 모델료, 위약금, 손해배상 등 12억75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당시 골드메달리스트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문을 냈지만, 2023년 11월 법원은 유한건강생활이 서예지와 소속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계약 해지에 따른 반환 책임만 인정해 “소속사가 2억2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양측의 계약서에는 “광고모델이 음주운전, 뺑소니, 폭행, 학교폭력, 마약 등 혐의로 입건되거나 이를 인정하는 등 공인으로서 품위를 해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계약서에 ‘학교폭력’이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계약 위반 사유가 발생했다고 봤지만, “서예지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모두 계약 기간 전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불거진 의혹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서예지의 이미지가 훼손됐기 때문에 유한건강생활이 광고모델 계약을 해지한 것은 적법하다고 보면서 ‘모델료가 지급된 이후 광고 방영이 취소될 경우 모델료의 50%를 반환한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소속사가 유한건강생활에 2억2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다만 서예지가 아닌 소속사에 반환 책임을 물린 것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김수현은 위약금을 물 책임이 있을까
대표적 한류 스타인 김수현은 화장품, 외식, 의류, 식품, 명품 브랜드 등 줄잡아 15개 안팎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논란이 불거진 후 아이더와 샤브올데이는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SNS에 있던 김수현 관련 콘텐츠를 모두 삭제했다. 당초 “현재 모델 관련 계획된 일정들은 모두 보류한 상태”라던 딘토 측은 15일 “김수현 소속사의 입장표명을 확인한 결과, 광고 모델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판단했다”며 해지를 공식화했다. 명품 브랜드 프라다 역시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던 김수현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앰배서더로 발탁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광고계에 따르면, 김수현의 1년 기준 광고 모델료는 7억∼10억 원 수준이다. 7억 원으로 잡고 15개 광고의 모델을 맡고 있다고 가정하면 105억 원의 개런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위약금 2∼3배가 적용된다면 산술적으로 200억∼300억 원을 물어야 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위약금 발생 여부에 대해 법조계는 다소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의적 책임 및 사회적 파장과 법적 처벌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크게 문제되는 부분은 ‘미성년자 교제’ 여부다. 김수현 측은 “김새론이 성인이 된 후 교제했다”며 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또한 유족이 김수현과 김새론이 교제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인 2016년, 김새론은 15세였다. 당시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 기준은 ‘13세 미만’으로 현재보다 낮다. 즉 김새론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 법은 2020년 개정돼 ‘16세 미만’으로 바뀌었다.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는 “이 사안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 개정전 사안으로 13세 미만의 자에 대하여 성적 관계가 있었던 것이 입증되는 경우에 한해 처벌되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현재 기준으로는 성적 관계가 있으면 엄연히 법적 처벌 가능성도 있는 행위로 윤리적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앞선 서예지 관련 재판은 광고주와 연예인 간 계약서에 포함되는 ‘품위 유지’에 대한 해석을 화두로 던진 판례다. 법원은 이 소송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사유를 명시했다 하더라도 광고모델 계약 기간 이전에 벌어진 일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란 이유로 해명을 요구할 수 없고, 이런 요구가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만약 광고주들이 김수현을 상대로 위약금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 판례가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위약금 없이 광고 모델료 일부를 돌려주는 서예지 사례와 비슷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위약금 및 손해배상, 소속사와 연예인의 책임 비율은
광고주나 제작사 등이 위약금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때는 연예인과 소속사를 동시에 문제 삼는다. 소속사가 연예인의 준법과 품위 유지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연대 보증’의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배우 지수는 지난 2021년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 방송 도중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며 중도 하차했다. 당시 제작사는 지수와 소속사 키이스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7월 법원은 “키이스트는 제작사에 14억2147만여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키이스트는 2021년 5월 이미 지수와 전속계약이 해지됐지만, 논란이 불거진 당시 “책임 있는 자세로 제작사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일탈로 불거진 사안일 경우, 연예인이 소속사의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배우 강지환은 지난 2019년 출연 중이던 드라마 ‘조선생존기’ 외주 여성 스태프 2명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이에 강지환이 참여한 촬영 분량을 폐기하고 다른 배우를 기용해 재촬영해야 했던 ‘조선생존기’ 제작사는 강지환과 전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53억 원대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전 소속사는 강지환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전 소속사와 강지환이 드라마 파행에 대한 공동 채무를 져야 하는 연대보증약정 관계”라며 기각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강지환은 전 소속사에 34억8000만 원 상당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강지환의 범행은 사적 영역에서 강지환의 행위로 발생했고 당시 소속사가 강지환의 주거지에서 야간에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처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관련기사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