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선고 불복 정치 내전 우려 절차 정의 논란 사법신뢰 위기 관용·자제 잃고 계엄으로 폭발
적대 구조화 87체제 한계 노정 헌재는 공정·합리적 결과 내고 여야는 승복과 통합 앞장서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광장의 정치’가 위험 수위로 치닫는다. ‘헌재를 때려 부수자’ ‘국민폭동’ ‘지×발광’ 등 과격한 구호와 욕설이 난무한다. 여야는 공식적으로는 승복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단식농성과 삭발, 탄핵 촉구 도보 행진 등으로 헌재를 압박했다. 국민의힘도 탄핵 각하·기각 촉구 릴레이 시위에 의원들이 동참했다. 말만 승복이지 행동은 불복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탄핵심판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에 달했다. 정치적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안을 놓고 좌·우파가 찬탁·반탁으로 두 동강 난 80년 전 해방 정국을 보는 듯하다.
무엇이 이토록 심각한 국론 분열을 가져왔는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0대 대선 0.73%포인트 차이가 시발점이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사실상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대장동 사건 등 범죄 의혹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4월 제22대 총선은 두 사람에게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김건희 여사 문제와 채 상병 사건, 의정 갈등 등 악재 끝에 윤 대통령은 참패했다. 첫 영수회담으로 협치가 이뤄지는 듯했으나 결렬되면서 정쟁은 깊어졌다. 민주당은 쟁점 법안들을 일방 처리했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응수했다.
11월 15일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의원직 상실 판결형으로 위기감은 더 커졌다. 김여사특검법 등으로 줄기찬 공세를 펼쳤다. 국무위원 등을 줄탄핵 하고 예산까지 삭감했다. 비상계엄 전날인 12월 2일에는 감사원장 탄핵안이 발의돼 계엄령 발동의 동인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적대적 공존이 계엄으로 폭발한 것이다. 계엄은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과 역시 초보 정치인인데도 당을 ‘1인 체제’로 만들어 대통령 공격에 나선 이 대표의 합작품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와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을 민주주의 유지의 핵심 요소로 봤다. 행정 권력을 쥔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장악한 야당 대표 간 극한 대결이 펼쳐졌다. 관용과 자제는 설 자리를 잃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운이 잇따를 때마다 대통령 권력 집중을 낳은 1987년 헌법 체제의 한계에 대한 지적과 개헌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척결 대상으로 삼은 윤 대통령과 대통령을 타도 대상으로 본 이 대표 간 갈등은 1987체제의 모순을 분출시켰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를 계엄 명분으로 삼았지만, 이면엔 본인과 부인의 사법 리스크 방어 의도가 있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이 대표 역시 대통령 권력 견제를 내세웠지만, 본인의 사법 방탄을 위해 줄탄핵 했다고 봐야 한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과 헌재, 법원 등 사법부도 절차적 흠결과 불공정성 논란을 일으키며 삼권분립의 기반이 흔들렸다. ‘사법의 정치화’가 신뢰 위기를 불렀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무리수는 적법성 논란에 이어 윤 대통령 구속취소로 이어졌다. 외풍에 흔들리는 듯한 헌법재판관들의 절차적 정의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도 역풍을 불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헌법재판관들이 헌법과 양심에 따른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아야 국론 분열을 막을 수 있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국회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헌재를 압박하는 집회와 시위도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적대 정치와 정치 양극화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통감하고 결자해지해야 한다. 기각된다면, 윤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해 19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한 대로 행동하면 된다. 인용된다면, 이 대표는 집권용 실용주의가 아닌 권력 분산 등을 담은 개헌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승복과 국민 통합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