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畏友) 지하가 그려준/ 그림 속의 난이 베란다 안쪽에서/ 힘차게 웃고 있네/ 그림 속 자연은 언제나 청춘// 오랜만에 들려온 영상 10도 소식/ 외투 벗고 나갔다가/ 오싹- 도로 들어왔다/ 겨울과 봄이 함께 내 안에 있을 줄은’

- 김주연 ‘겨울에서 봄 사이’(시집 ‘강원도의 눈’)


간절기는 인터넷 오픈 사전에만 있는 단어다. 절기와 절기 사이, 환절기와 같은 뜻이다. 혹자는 일본어식 표현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신조어일 뿐이라고도 한다. 출처, 어원 등과 무관하게 나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계절과 계절 사이엔 간절함이 있지 않나 생각하고 피식거린다.

겨울과 봄 사이 마음은 어쩔 줄 모른다. 몸살감기에 걸린 듯 으슬으슬하기도 하고 걱정이라도 있는 듯 어둑해지기도 한다. 아니다. 한낮은 포근하고 기운이 약동하는 만큼 감기나 걱정이 아니라 설렘이고 들뜸인가 싶기도 하다. 어쩔 줄 모르겠다. 이를 두고 봄을 탄다 하는 모양이다. 과연 타닥타닥 연기를 피워내며 불이 난다. 굽이치며 꿈틀대는 봄의 잔등에 올라탄 것처럼 멀미가 난다. 까닭없는 한숨이 잦아, 복 달아난다는 잔소리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에 없는 ‘간절기’ 그 중간에 놓인 건 내 몸이 아닌가 싶다. 시인의 말마따나 겨울도 봄도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이는 제법 고통이다. 마치 갓난아기처럼 일상의 빛에 눈을 찔리고 평범한 들숨에 허파가 조인다. 산통에 비할 바는 못 되나, 이 역시 낳으려는 데에서 오는 괴로움이다. 낭창한 가지 끝에 매달릴 노오란 개나리꽃이라든지 창문 건너편을 수놓을 연분홍 벚꽃이라든지 하는, 그래 바로 사랑이다. 나는 사랑이 간절하다.

어제 늦은 밤 꽃샘추위 퇴근길에 대학가를 지나왔다. 이제 더는 내 것이 아닌 시간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립고 쓸쓸하면서도 아직 내게도 푸릇한 시간이 남아 있다고 우기고 싶었다. 두툼한지 얇은지 알 수 없는 겉옷 주머니 속 주먹을 꼭 쥐어 보았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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