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부동산 시장 들쑤셔" 비판 거세…강남권 집값만 자극
‘시장 침체 가능성’ 예상은 빗나가…"대권행보에 마이너스 될 것"
서울시가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를 한 달여 만에 되돌리면서 "쓸데없이 부동산 시장만 들쑤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불합리한 규제 폐지’와 ‘시민 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지만, 시장이 예상과 달리 빠르게 과열 양상을 보이자 기존보다 더 넓은 구역을 규제 지역으로 묶어버렸다. 애초에 오세훈 시장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규제 폐지’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게 잘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오 시장은 19일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이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제 이후 초반에만 해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결국 오판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이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기로 한 1차적인 배경은 불합리한 규제라는 판단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1월 ‘규제 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대해 "재산권 행사를 임시로 막아놓은 것이므로 그동안 풀고 싶었고, 당연히 풀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형성을 유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자유 거래를 침해하는 반시장적 규제임은 틀림없다"며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는 ‘극약 처방’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저는 여전히 주택 시장이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토허제와 같은 반시장적 규제는 불가피할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실질적인 거래 억제 효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미지정된 주변 지역에서 풍선 효과처럼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허가구역에 살고 있거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 해제 요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남준 시 도시공간본부장은 지난달 12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발표 브리핑에서 "구역 지정 시 가격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 효과가 2, 3년 뒤면 상당 부분 사라지고 지정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를 억제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연구용역 결과가 있었다"고 했었다. 시는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화 추세여서 규제를 풀 적기라고 판단했다. 단기간에 다소 집값이 오르더라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고, 6개월 정도 지켜보면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오 시장과 서울시의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송파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72%, 강남구는 0.69%, 서초구는 0.62% 각각 상승하며 7년여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2월에 강남 3구를 중심으로 갭투자 비율이 상승하면서 투기성 거래의 증가 신호도 포착됐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의 집값도 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시는 지난달 28일 배포한 자료에서 "잠실·삼성·대치·청담(잠·삼·대·청) 아파트 거래 분석 결과, 토허구역 해제 직전 대비 거래량은 증가했으나 평균 거래가격은 오히려 하락해 전반적인 가격급등 현상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9일 배포 자료에서도 "부동산 가격상승 기대심리로 호가가 상승했으나 실거래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에는 ‘거래량이 70% 늘고 매매가격은 2.7%(중형 기준) 상승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해 불과 1주일여 만에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지 않고 그대로 놔뒀으면 올해 6월에 자연스럽게 풀리는데 이 때는 대통령 선거 시기와 묘하게 겹칠 수 있다"며 "그래서 오 시장이 미리 해제 발표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사실 서울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았을 때는 2022~2023년 이었는데, 그때는 강경하게 유지했으면서 상황이 좋아진 올해 푼다는게 이해가 안됐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자신의 대선 행보와 연관 지으며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을 많이 의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의도가 아닌 정책적 신념에 따른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권 한 공인중개사는 "신념에 따른 결정이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쭉 밀고 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못해 시장 참여자들만 큰 혼란에 빠뜨렸다"며 "주위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결정이 오 시장의 대권 행보에 분명히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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