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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거짓말도 보호하는 수정헌법 1조… ‘피노키오 트럼프’는 거침 없다

美대법 “부수적 피해 없는 한
고의적 거짓말도 막아선안돼”
판례상 가짜뉴스 사실상 허용
사기·위증·명예훼손은 제외

‘표현의 자유’ 광범위한 보장
트럼프 시대에 다시 도마 위

트럼프 허위·과장발언 많지만
‘수정헌법’영역 내… 처벌 못해
일각 “요즘시대와 안맞는 조항
거짓정보탓 양극화 심화” 반론


워싱턴 = 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거침없이 연설을 할 때면 미국 언론은 꼬박꼬박 실시간 팩트 체크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로 대는 내용의 상당수가 과장됐거나 아예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거짓이 포함된 자신의 발언을 통해 기대했던 효과는 이미 충분히 거뒀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의 발언에 대한 팩트 체크는 ‘사후약방문’이다. 그럼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사전에 혹은 사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거짓 연설에 대한 구제책은 진실한 연설”이라는 앤서니 케네디 전 연방대법관의 언급처럼 법적 제재의 수단은 없다. 특히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는 고의적인 거짓말도 보호 대상으로 한다는 게 그간 미국 정치와 사법부가 만든 판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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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처벌 권한이 민주주의 위협할 수도…거짓말도 보호하는 수정헌법 1조= 수정헌법 1조는 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구다. ‘의회가 종교의 설립,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언론의 자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한 줄은 미국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기둥이 되고 있다.

단 수정헌법 1조의 보호 대상에 정치인의 의도적인 거짓말,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거짓 주장이 포함되는지를 두고서는 당장 고개를 젓게 된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일관되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의적인 거짓말 역시 수정헌법 1호에 따라 막거나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빼앗긴 용맹법’(Stolen Valor Act)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위헌 결정이다. 빼앗긴 용맹법은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를 영웅시하는 미국의 풍토를 악용해 거짓말로 훈장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돈과 명예를 챙긴 ‘가짜 전쟁 영웅’들을 처벌하기 위해 2006년 제정됐다.

이 법은 훈장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경우 최고 1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규정을 뒀다. 해병대에 복무하고 명예훈장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주장한 캘리포니아주 수자원위원회 위원인 사비에르 알바레스는 2007년 빼앗긴 용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정부는 거짓말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이나 사기 등 법적으로 인정되는 부수적인 피해가 있지 않은 한 거짓말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보호된다고 결론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공적 및 사적 대화에서 공개적이고 활발한 의견 표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부 허위 진술이 불가피하다”며 “거짓말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정헌법 1조가 정부의 거짓말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지 않으면 정부는 거짓 진술로 처벌할 수 있는 발언 목록을 끝없이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미국 수정헌법 1조도 모든 표현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사기와 위증, 명예훼손을 위한 거짓말은 수정헌법 1조 보호 대상이 아니다. 또 ‘브란덴부르크 대 오하이오 판결(1969)’에서 대법원은 불법행위를 유발할 직접 의도가 있는 경우 선동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외 진정하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발언이나 외설(밀러 대 캘리포니아 판결) 역시 수정헌법 1조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이 같은 대법원 판례는 가짜뉴스, 허위 정보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최근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과 정치권의 판단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정부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정부가 권한을 남용하도록 요청하는 것으로 귀결돼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케네디 전 대법관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15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근에서 학생들이 ‘언론의 자유’가 적힌 팻말을 들고 반(反)이스라엘 시위 주동 혐의로 체포된 마흐무드 칼릴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5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근에서 학생들이 ‘언론의 자유’가 적힌 팻말을 들고 반(反)이스라엘 시위 주동 혐의로 체포된 마흐무드 칼릴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거짓말 넘쳐나는 트럼프 시대…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수정헌법 1조=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내뱉는 거짓말은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 영역 안에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헌법학을 전공한 미겔 쇼어 드레이크대 교수는 “거짓말보다 정부의 언론 규제가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라는 2012년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의존한 것으로 수정헌법 1조는 정부의 검열이 자치를 위협하는 주요 위험 요소였던 시대에 작성됐다”며 “오늘날의 정치인은 새로운 정보 기술을 활용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고, 약화된 언론은 이런 주장을 감시하지 못하거나 편파적인 뉴스 미디어가 이를 증폭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래비스 리아웃 워싱턴주립대 정치학 교수는 “정치인의 거짓말과 관련해 명예훼손에 대한 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인이 피해 대상일 경우 법적 제재가 가해지기까지 ‘설득력 있는 증거에 의해 허위임이 입증돼야 하고 실질적인 악의가 있어야’ 하는 등 부담이 매우 높다”며 “자연스레 정치인들이 과장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많은 여지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고치지 않은 AP통신에 대한 취재를 제한하거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미국 컬럼비아대 졸업생 마흐무드 칼릴의 사례 등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된다. 제프리 파일 변호사는 워싱턴포스트(WP)에 “변호사 생활 23년 중 본 어떤 사건보다 명백히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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