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이털 닥터 - 정성호 서울아산병원 교수
국내 심장이식 최다 의사 꼽혀
병원 수술 950건 중 42% 집도
의사, 환자 사랑하는 마음 필요
정년까지 수술하려 매일 운동
이식 대기환자 年 1400명 밀려
‘심정지 때 장기기증’ 법제화를
심장이 제 기능을 잃은 환자에게 유일한 희망은 심장이식이다. 국내 심장이식 수술은 1992년 최초로 시행된 후 2023년 처음으로 연간 200건을 넘었다. 국내 첫 심장이식 수술이 이뤄졌던 서울아산병원은 누적 수술 1000건을 앞두고 있다. 이는 국내 최다 이식 기록이다. 심장이식 1년 생존율은 95%로 국제심폐이식학회 평균(81%)을 크게 웃돈다. 이 병원에서 실시한 심장이식 수술 950여 건 중 42%인 400건을 집도한 이는 정성호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가장 많이 집도한 의사이기도 하다. 심장이식은 흉부외과 수술 중에서도 가장 고되고 힘들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정 교수는 “제게 수술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의사로서 살아가는 동력”이라며 “자신의 심장을 기꺼이 맡기는 환자들 때문에 수술을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늘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에 들어갈 때 적어냈던 희망 전공은 흉부외과와 신경외과였다. 의대생 시절 심장과 뇌를 다루는 바이털(필수의료)과가 가장 멋져 보였다. 1997년 3월 인턴 생활을 흉부외과에서 먼저 시작했다. 평생 함께하고픈 선배들을 만났다. 운명 같았다. 정 교수는 심장을 만져보기도 전에 흉부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튼튼한 체력과 특유의 성실함은 ‘서전(surgeon)’으로서 장점이 될 것 같았다. 레지던트 생활은 고달팠다. 밤낮없이 수술실에서 지낼 때도 많았다. 육체적·정신적인 한계 상황에도 자주 부딪혔다. 의사로서 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런 그를 의사로 키운 곳은 결국 병원이었다.
정 교수는 “똑똑한 편은 아니었지만 곁눈질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성향이었다”며 “아주 뛰어나진 않더라도 오랜 기간 성실하게 하다 보면 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서울아산병원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펠로(전임의) 생활을 마치고 2009년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처음 집도한 수술은 심장이식. 정 교수에게 심장이식 수술이 각별한 이유다. 당시 그는 비로소 흉부외과 의사로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집도 기회가 더없이 감사하기도 했다. 이후 정 교수의 일상은 수술하는 데 맞춰졌다. 그는 심장이식 외에도 판막 수술, 인공심장 수술 등을 주로 맡는다. 2023년엔 400여 건 수술을 집도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 중 100여 건이 야간과 휴일 수술이었다. 요즘에도 1주일에 5∼6건, 연간 250∼300건 정도 집도한다. 수술 일정은 올 연말까지 꽉 차 있다.
비결은 ‘성실’이다. 그는 성실했기에 꾸준히 수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의사 컨디션으로 인해 수술 결과가 바뀔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체력 관리를 항상 한다”며 “정년까지 12년 6개월 남았는데 아직은 해야 할 수술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수술을 잘하기 위해서 하루 1∼2시간씩 꼭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과 의사가 행복하려면 수술 결과가 좋아야 한다”며 “수술이 잘되면 야간 응급상황도 적고, 환자들에게 좋은 얘기만 해줄 수 있어 마음도 덜 아프다”고 덧붙였다.
심장이식 수술을 할 때 애로점은 ‘시간’이다. 병원 여건상 야간과 휴일, 주말에 이뤄져서다. 심장이식이 잘되려면 혈액이 공급되지 않은 ‘허혈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심장 허혈시간은 4시간 이내여야만 한다. 기증자·수혜자 관리부터 이식 장기 운반, 이식 수술까지 빈틈없이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가장 힘든 점은 늘어나는 이식 대기자다. 2023년 심장이식 수술은 200건을 넘겼지만 당시 대기자는 1400명 이상이었다. 저출생 고령화 현상 탓에 장기기증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심장이식 대기자가 증가하는 속도를 이식 수술 건수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대안으로는 ‘순환 정지 후 장기기증(DCD)’이 거론된다. 현재 국내에선 생체이식 외에는 뇌사자만 장기를 기증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심정지 등으로 전신의 혈액순환이 정지돼 사망한 이가 장기를 기증하는 DCD가 허용돼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체 장기기증의 40∼50%를 DCD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DCD를 허용한 이후 장기이식 수술이 30% 늘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현행법상 ‘사망’에 대한 정의도 없고, 관련 법도 10년가량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정 교수는 “국내 장기이식 수술의 역사는 ‘없는 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며 “장기이식 관련 법은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된 폐 생체이식 수술도 합법은 아니었다. 당시 폐는 생체이식이 가능한 장기가 아니어서다. 부모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폐를 이식해줬는데 부모가 대통령실과 정치권에 탄원하면서 관련 법이 바뀌었다. 이때 폐도 생체이식 장기에 포함됐다.
정 교수는 “생명을 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의미 있게 여겨야 한다”며 “장기이식을 두고 ‘규모의 경제’나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 결과물을 요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DCD가 법제화돼 보다 많은 대기자들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누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환자들은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맞을 때 의사를 만난다. 이에 정 교수는 매일 환자를 본다는 이유로 빠져들 수 있는 매너리즘을 경계했다.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는 ‘측은지심’을 꼽았다.
“의사에겐 측은지심이 있어야 해요. 의료라는 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 뛰어난 머리보다 마음이 중요할 때가 많아요. 의사에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환자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환자를 낫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의사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의사로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도 생기지 않을까요. 결국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니깐요.”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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