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연방 하원 의원(435명) 중 100여 명이 워싱턴DC에 집이 없어 의회 사무실에서 숙식한다는 뉴스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국토가 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싱턴DC 내 침실 한 개 딸린 방의 평균 월세가 2500∼3000달러(약 362만∼434만 원) 수준이다 보니 17만4000달러(약 2억52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하원 의원들이 두 집 살림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기 중에는 의원실에 간이침대를 두고 잠을 잔다고 한다. 밤에 쥐들이 출몰해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의원실 소파나 간이침대에서 자는 이들을 ‘카우치 코커스’(Couch Caucus·소파 의원 모임)라고 부른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의원 4명이 1명의 직원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1명이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의원은 임기 동안 변호사, 학자 등으로 구성된 입법조사관의 도움을 얻어 100건이 넘는 법안 발의를 준비한다. 업무에 파묻혀 살아가다 보면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쉽지 않다. 의원 본인 주소가 국회와 50㎞ 이상 떨어져 있다면 한국의 원룸 수준인 임시 숙소가 배정된다. 국민의 존경을 받지만, 직업으로 보면 ‘극한직업’과 다름없다.

세계적으로 대우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큰 사무실에 9명의 보좌진과 각종 특혜 등을 받고 있다. 국회 안에 사우나, 운동시설, 병원 등도 두루 갖추고 있어 생활하기도 편하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국회의원은 일 때문에 힘들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일보다는 ‘투쟁’하느라 너무 바쁘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매일 아침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8.4㎞를 걷는다. 도보 투쟁을 하는 것이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늦어지면서 2주째 하고 있다. 박수현·민형배 의원 등은 광화문 천막 당사에서 일주일째 단식을 하다가 18일 건강 악화로 중단했다. 의원들은 오전·오후로 의원총회를 갖고 릴레이 연설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60여 명의 의원은 헌재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해야 하고 주말이면 장외 집회에 참석한다. 다른 나라 의원들은 일하느라 힘들지만, 우리는 시위·농성·단식·삭발하느라 바쁘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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