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성 코트라 사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코트라 본사 로비 벽에 새겨진 해외 무역관(131곳) 지도 앞에서 충분히 ‘수출 5강’을 달성할 수 있다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윤슬 기자
강경성 코트라 사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코트라 본사 로비 벽에 새겨진 해외 무역관(131곳) 지도 앞에서 충분히 ‘수출 5강’을 달성할 수 있다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윤슬 기자


■ 데스크가 만난 사람 - 강경성 코트라 사장

Q. 위기의 한국호, 미래가 있는가

반도체·2차전지·LNG船 건재
포트폴리오 편중된 일본 맹추격
수출격차 200억달러까지 좁혀

전력 계통 교체주기 돌아온 美
시스템 수요 맞출 곳은 한국뿐
세계 정상급 원전 기술도 경쟁력

관세전쟁속 정부·기업인 미국행
대응 패키지·전략 잘 마련할 것


인터뷰 = 이관범 산업부장 frog@munhwa.com
정리 =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전 세계 85개국·131개의 해외 무역관을 운영하는 코트라의 수장인 강경성 사장을 만난 것은 지난 12일 오후였다. 이날 오후 1시부로 한국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전쟁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새롭게 발효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의 덤핑 공세와 경기침체 장기화로 고전해온 한국 철강 업계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과 싸워야 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 관세조치 대응전략회의’를 마치고, 강 사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코트라 본사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상수가 됐다”는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고 했다. 국정 공백 사태와 미래 성장동력 약화로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한 수출 한국호의 미래를 낙관하는 전문가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얘기였으리라. 산업계 조차 수출 한국호가 정점을 지나 쇠락하는 ‘피크아웃’의 늪에 빠져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터였다.

급하게 강 사장을 찾은 이유는 모두가 어둡게 바라보는 엄혹한 시절에도 ‘수출 희망가’를 소리높여 강변하기 때문이다. 수출 한국호의 장래는 여전히 밝고, 어떤 도전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그의 육성을 통해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초유의 위기 상황을 이겨낼 용기를 얻고 싶었다. 경북 문경시 산골짜기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공고 출신으로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산업부 1차관 등에 오른 강 사장의 결기를 들어봤다.



―한국도 관세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한편으론 중국이 국내 수출 간판업종을 무섭게 따라붙고 있다. 인공지능(AI)·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선 한국을 압도한다. 수출 한국호의 피크아웃 우려를 얘기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수출 최전선을 지키는 수장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고 싶었다.

“수출은 무조건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 할 정답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대외 경제’를 지향했고, 모든 역량을 집중한 결과 우리는 선진국이 됐다. 어려움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 수출은 더 성장하고, 곧 전 세계 ‘수출 5강’도 달성할 것이다.”

―근거가.

“첫 번째는 우리 경제 우리 산업의 포트폴리오가 탄탄하다. 첨단 산업부터 주력 산업까지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나라는 거의 없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하는 반도체와 심장인 2차전지, 눈인 디스플레이를 포함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방산까지 아우른다. 섬유산업도 지난해 수출만 103억 달러(약 15조 원)를 달성했다. 사라진 줄 알고 있었지만, 소재 산업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신하며 건재하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기업인의 열정과 기업가 정신이다. 자본, 기술, 인재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와이셔츠 한 장에 1달러 수출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산업을 고도화시키면서 지금의 반도체·방산까지 왔다. 우리 기업인들은 정치 상황이 어떻게 됐든, 글로벌 상황이 어떻게 됐든 죽을 각오를 하고 연구·개발(R&D)도 하고 해외로 뛰고 있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의 저력과 시스템 역량이다. 전 세계 제조업의 허브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그렇게 어렵다고 했는데도 대한민국 수출은 사상 최대인 6838억 달러를 달성했다. 외국인 투자는 또 어떤가. 코트라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에 따른 전담 기관인데, 어려운 정치 상황에서도 매일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신고는 변화가 없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와 산업의 미래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까 얘기한 대로 한국의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대단히 잘 갖춰져 있으니까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한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ASML 글로벌 4대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들이 다 경기 용인시에 연구개발 센터를 두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수출 5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현재 우리나라가 6위인데.

“우리 앞에 있는 나라는 중국·미국·독일·네덜란드·일본이다. 네덜란드는 환적을 하는 유럽의 관문이기 때문에 그렇지 제조업이 강한 나라는 아니다. 결국, 경쟁하는 국가가 미국·중국·일본이다. 세계를 경영하고 제국을 일으킨 나라들과 당당히 유일하게 대적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과의 수출 격차는 200억 달러대까지 좁혀졌다. 곧 따라잡는다. 일본의 10대 수출 품목 포트폴리오와 우리나라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일본 10대 품목은 자동차·반도체·금 등의 편중도가 높다. 우리보다 훨씬 심하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거는 시간문제다.”

―직접 가본 중국의 도전은 어떤가.

“최근 중국 출장을 가봤는데 솔직히 무서움을 느꼈다. 중국은 이제 우리의 시장이라기보다는 경쟁자이고 더 무서운 존재가 되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전 코트라 중국 무역관장들을 다 소집해서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는지, 중국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전략 회의를 했다. 모든 무역관장의 얘기를 다 들었는데 결론은 ‘무섭다’였다. 우한(武漢)과 선전에서는 안면 인식 같은 기술이나 자율 주행차가 완벽하게 가동되고 있고, 전기차 기업만 200개에 이른다. 중국은 자동차를 정보기술(IT) 기기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원래 미국은 인건비나 제조비용이 저렴한 나라에서 하드웨어를 만들고 들여와서 자신들이 설계나 소프트웨어를 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돌연 제조업을 부흥하겠다는 전략으로 바꾸면서 우리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찾았듯 한국은 지금도 기회가 있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가. 현 정세를 구한말에 비교하는 분들도 많다.

“한민족 역사를 보면 항상 위기는 있었고 그 속에서 늘 기회를 찾았다. 중국에 대응하려면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첨단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제조업 부흥이 유효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원자재나 인건비를 합하면 생산비가 아마도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것의 1.5배에서 2배가 될 거다. 보조금을 안 주면 기업이 투자를 안 할 것이다. 보조금이 아니라 그냥 비싼 제조원가를 보존해 주는 수준이다. 아무리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또 자유무역의 유용성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흥은 도전인데.

“미국 제조업 부흥 역시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첫 번째 조선, 두 번째 전력 기자재, 세 번째 반도체와 에너지 개발 분야가 해당한다. 미국은 현재 조선 산업이 거의 무너졌다. 군함·잠수함을 만들기는 하지만 시간 내에 못 만든다. 중국을 빼면 군함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변압기나 차단기 이런 산업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미국에서 2년 전부터 수주가 물밀 듯 들어와서 5년치 일감을 우리 기업들이 받았다. 미국은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다 보니 전력 계통이 약한 상황이고, 교체 주기도 돌아온 것이다. 교체 수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철강 관세 발효 첫날이라 기업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을 텐데.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될 거고 상수가 됐다는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미국의 여러 조치가 예측 불가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어서 차분하게 호흡을 하면서 민관이 한 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이나 언론 입장에서 조금 답답할 수가 있다. 그래도 조금은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협상 메뉴로 올라간다’는 미국 정가의 유명한 격언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아닌가.

“일본이나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든지 협상을 하려고 한다. 반면 유럽연합(EU)·캐나다·멕시코는 결사 항전 태세다. 그렇다고 일본이나 대만의 결과가 좋다고 볼 수는 없어 예측이 어렵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어떤 생각이나 불만을 느끼는지 잘 파악해서 대응 패키지나 협상 전략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코트라 수장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경제안보 기관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 1962년도에 설립돼 수출·외국인 투자·해외 진출 업무를 담당하는 무역진흥기구로서뿐만 아니라, 이제는 공급망 안정화·통상·방위산업 교역 등과 같은 경제안보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 경제산업 지킴이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가 있다면.

“제조업의 위기다. 대한민국 창업 1세대들이 눈을 못 감을 지경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까지 나온 제조업 창업주의 아들이나 며느리들이 사업을 안 하고 차라리 스타벅스를 하는 게 낫다고 하지 않나.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사람과 기술이다. 인재들이 다 의대를 가려고만 해 걱정이다. 시스템적으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고, 가업 승계를 원활하게 도와야 한다. 상속세·증여세 다 내고 나면 경영권은 잃기 십상이다.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와 두 번 만났는데, 한국사람 칭찬을 많이 한다. 굉장히 스마트하고, 혁신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잠재력을 살려야 한다.”


고졸신화 쓰며 유리천장 깨… 일본과 소·부·장 싸움 진두지휘

■ 강 사장이 걸어온 길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공직 사회에서는 ‘고졸 신화 주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 사장은 1965년 경북 문경시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원전 현장직으로 사회에 입문했다. 이후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몸담은 뒤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보직을 거쳐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산업부 1·2차관 등을 역임했다. 이처럼 고졸 출신으로 고위 관료에 오른 인물로는 김동연 경기지사와 함께 강 사장이 손에 꼽힐 정도다. 김 지사는 덕수상고를 나와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직에 올랐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어떻게 보면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사인데, 우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진짜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늘 가졌다. ‘진인사대천명’이 좌우명이다. 두 번째는 겸손이다. 고향에서는 아직도 제가 인사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관료사회만큼 유리천장이 두꺼운 곳이 없는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고를 졸업한 다음 날 한국전력에 바로 입사해서 고리원자력본부에 6년간 근무했다. 주변에서 대학 얘기를 해 준 분이 없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현장 생활을 하며 더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을 때도 1주일 만에 한계를 깨닫고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계를 깨닫고 도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정책 결정 순간은.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행했을 때다. 당시 소재·부품 국장이었다. 날짜도 잊지 않는다. 6월 30일 일요일이었는데, 산을 오르다가 외신을 통해 내용을 접하고 등골이 오싹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일본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싸움은 거의 1년 이상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만 법을 새로 제정하고 제도를 손질하면서 한국 소부장 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만들 수가 있었다. 해당 사건이 있기 전만 해도 소부장 육성 얘기가 10년째 나왔지만, 답보 상태였다.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결국 일본에 종속되는 구조를 탈피해 보자는 취지였는데, 일본의 공격이 우리한테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됐다. 말 그대로 대오각성을 했다.”

―젊은이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열정·도전과 함께 소통의 중요성을 꼭 얘기해 주고 싶다. 자기 세상에 갇히면 안 된다. 기회는 세상과 교류하면서 얻어진다. 늘 제가 인턴이나 신입사원들에게도 소통을 강조한다. 같이 어울려라, 세상에 독불장군 없다. 함께 어울리면 기회가 생기고, 자기 인생에 방향이 생긴다.”
이관범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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