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길이다.(Water is the way.)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2009년 설립한 ‘Water.org’의 웹사이트에 떠 있는 문장이다. 많은 자선단체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의 식수 문제를 도우려 애쓰고 있지만, 우리 행성의 물 문제는 자선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지난 100년간 세계 인구는 4배 늘었으나 물 소비는 9배 증가했다. 이미 33년 전에 유엔이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지정했을 만큼 심각한 지구의 물 부족 상황은 기후변화라는 복병을 만나 더욱더 가속화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
매사가 그렇듯, 부족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예로, 에티오피아가 짓는 나일강 상류 초대형 댐은 이집트의 수자원 확보에 큰 위협이 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 간, 부산-경남 간의 물 갈등은 30년 가까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 부족은 산업의 명암도 가른다.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등은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필요한 공업용수는 하루 170만t인데, 이는 대구시 전체의 하루 소비량 규모다. 현재의 팔당댐 물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정부는 발전용 댐인 화천댐을 전환해 필요 물량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제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는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숫자를 보자. 우리나라 물 이용량은 연 366억t으로 추정되는데, 댐(56%) 하천(36%) 지하수(8%)가 그 원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수자원은 하늘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 댐 건설은 대규모 용수 확보를 위해 필요하지만 적지를 찾기 어렵고, 하천수와 지하수 또한 계절적·지역적 편차가 큰 문제도 있다. 앞으로의 새로운 가능성은 ‘버려지는 물’의 재활용이다.
첫 번째는 유출 지하수다. 지하철과 터널 등 지하개발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지하수는 연 1억4000만t이나 되지만, 대부분 하천으로 흘려보내거나 하수로 방류된다. 지난해 준공된 영등포 ‘물길 정원’은 하천으로 방류되던 지하수를 수경시설로 활용해 연 66만t의 물과 70억 원의 수도 요금을 절감했다. 일본 기타큐슈에서는 유출 지하수로 하천을 만들었고, 독일은 옥상 농지용수, 프랑스는 버스터미널 세차 용수로 사용한 사례가 있다. 유출 지하수는 조경, 수경시설, 기타 생활용수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하수처리수의 재이용이다. 하수처리시설을 거친 물을 공업·농업 용수 등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재이용수는 도시 인구밀도와 하수발생량에 따라 비교적 안정적인 예측을 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 지난 연말 화성·오산의 하수를 재처리해 하루 12만t을 삼성전자 기흥·화성캠퍼스에 공급하는 양해각서(MOU)가 맺어졌다. 이는 40만 명이 하루 사용할 양이다. 호주 퀸즐랜드주는 하루 23만t을 공업·농업 용수로 쓰는 프로젝트가 있고, 프랑스 베올리아사(社)는 하수를 식수로 재이용하는 시설을 최초로 가동했다. 싱가포르의 ‘뉴워터(NEWater) 프로젝트’는 2060년까지 물수요량의 50% 이상을 하수 재이용수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직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북미 원주민의 속담이 있다. 버려지던 물을 새로운 수자원으로 순환시키는 것,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