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뷰파인더는 어둡고, 셔터는 아예 눌러지지 않습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통영에서 다시 좌도까지. 꽃피는 시기를 벼르고 별러 그 먼 거리를 왔는데….
“탈 거예요, 말 거예요?” 선원의 다급한 재촉이 이어졌습니다. 선택은 둘 중의 하나. 쓰지 못하는 카메라를 들고서 일단 섬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섬에 가지 말고 어떻게든 카메라부터 고쳐볼 것인가. 망설이다 배에 올랐습니다. 카메라는 없지만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을 믿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좌도에 내려 마을회관에 고장 난 카메라와 렌즈가 든 무거운 가방부터 맡겼습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만 쥐고 홀가분하게 섬을 둘러봤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허전했습니다만,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어차피 휴대전화의 제한된 기능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니 애를 써봐야 거기서 거기일 거야.’ 어깨를 짓누르는 카메라와 가방의 무게도 없으니 섬에서의 여정이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좌도를 취재하고 얻은 사진 결과물은 차이가 있었지만, 분명한 건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갔을 때보다 휴대전화만 들고 갔을 때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려놓을수록 여행은 즐겁다는데, 여행을 ‘일’로 하는 경우에도 그렇더군요.
카메라 없는 여행을 경험해보고 ‘여행자들의 사진찍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사진이 먼저’입니다. ‘남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사진’을 얻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아무리 ‘남는 건 사진’이라지만 여행지에서의 즐거움과 감동의 중심은 카메라가 아닌 ‘나’입니다. 여행의 진정한 순간은 ‘장면’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감정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가끔은 ‘카메라 없는 여행’을 해보시길 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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