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시골에는 ‘초네따이’가 산다. 제주어를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언어 감각을 발휘해 보면 ‘촌엣아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촌(村), 곧 시골에 사는 아이라는 말인데 이런 조어가 가능할까 싶지만 ‘눈엣가시’를 생각하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런데 표준 발음대로 하자면 ‘초네다이’가 되어야 하니 단어의 구성을 알아도 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에 짝을 맞춘 ‘시엣아이’, 제주말로는 ‘시에따이’도 있으니 제주말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제주말에서 말이 합쳐질 때 앞 단어의 받침이 복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똘(딸)’과 합쳐지면 ‘똘아이’가 아닌 ‘똘라이’가 되고 ‘지집(계집)’과 합쳐지면 ‘지지빠이’가 된다. ‘못 잊어’도 ‘모띠저’가 된다. 그러니 ‘촌엣아이’의 사이시옷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ㅅ’이 복사되어 ‘초네싸이’가 되지 않고 ‘초네따이’가 되는 것은 이 땅의 방방곡곡에서 문을 열어 놓고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국문과 대학원생이 되면 알 수 있다.

우리말의 역사를 아는 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아찌’를 떠올릴 수도 있다. 장아찌만으로는 어원을 파악하기 힘든데 본래 ‘장앳디히’였으니 촌엣아이나 눈엣가시와 같은 말이다. ‘디히’가 김치의 옛말이니 이 말은 ‘장(醬)’에 박아둔 채소를 가리킨다. 이 또한 국문과 대학원생 정도가 돼야 알 수 있는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는 장아찌로 쓰고 읽는 것이다.

과거 ‘제주따이(제줏아이)’에게 ‘무테떠른(뭍엣어른)’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늘날에도 제주 사람들은 ‘무테껏(뭍엣것)’에 대한 경계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제주 사람에 대한 멸시와 소외, 그리고 근현대의 무자비한 폭력을 겪은 탓이다. 제주따이에게 이런 경계심을 물려주지 않기 위한 모두의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물론 제주떠른과 무테떠른 할 것 없이 맛있는 장아찌는 길이길이 물려주어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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