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아인 리스크’넘어… 우여곡절끝 4년만에 개봉한 영화 ‘승부’
戰神 조훈현 - 빈틈 보이면 베고 찌른다
손짓·표정에 실어낸 ‘격한 내면’
스승으로서의 다양한 면모 담아
神算 이창호 - 몇수앞 보며 패배는 없다
당혹감·죄스러움속 승리감 표현
성격적인 변화 뚜렷하게 담아내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승부’는 4년 전 봄에 촬영을 끝낸 작품이다. 주연배우 유아인이 마약을 상습 복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개봉이 차일피일 밀린 끝에 이제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유아인 악재’로 인해 자칫 꺼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던 운명의 영화.
그러나 악재를 잊게 하는 배우들의 연기 ‘신공’이 든든하게 115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었다. ‘승부’는 한국 바둑을 세계 최강으로 만든 조훈현·이창호 9단의 맞대결을 다룬 영화다. 9단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1990년대 조훈현이 이창호를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는 제자로 들이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제간 맞대결로 중반부에 정점을 찍고, 제자에게 패배한 조훈현이 다시 일어서는 후반부로 짜임새를 갖췄다. 그 중심을 잡는 조훈현 역할을 배우 이병헌이 맡았다. 이창호를 연기한 유아인을 포함해 두 배우는 ‘연기 9단’으로 불리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조훈현의 승부 = 조훈현의 별명은 ‘전신’(戰神·전투의 신)이다. 상대가 빈틈을 보인 순간, 날카로운 칼로 베고 찌르는 바둑을 한다. 대국(對局) 도중에 승기를 잡으면 콧노래를 부르거나 다리를 떨며 상대방 신경을 긁는 버릇도 있다. 자아가 이만큼 크고 강한 인물이기에, 22세 어린 제자 이창호에게 패배한 것은 뼈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창호를 “최고로 키워야지”라고 큰소리를 쳤건만, 상상 이상으로 너무 이른 시점에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어 ‘최고’가 돼버렸다.
굴욕감, 질투심, 패배감 등이 차오른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 바둑 소재는 그 자체로 장애물이다. 겉보기에 고요하기 그지없는 바둑의 특성상 소리를 지를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바둑알 하나씩을 놓는 손짓과 그 표정 등으로 격한 내면을 표현하는 수밖에 없다. 이병헌은 “조용한 가운데 작은 움직임과 눈빛의 떨림으로, 크게 움직이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제자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다정함부터, 자동차에 함께 탄 제자 옆자리에 앉지 못하는 쪼잔함까지, 이병헌은 스승으로서 인간적 면모를 잘 드러냈다.
◇이창호의 승부 = 이창호의 별명은 ‘신산’(神算·계산의 신)이다. 인간이 맞나 싶을 만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계산으로 대국을 끌고 간 다음 간발의 차로 승리한다. 그래서 상대가 빈틈을 보인다고 해도 섣불리 싸움을 걸지 않는다. 스승 조훈현이 오로지 이기기 위한 바둑을 했다면, 이창호는 ‘지지 않기 위한 바둑’을 했다. 이창호는 그래서 스승의 것을 그대로 배우려 했던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그 바둑으로 스승을 이겨보자고 말이다. 결국 “조훈현 바둑은 너무 무섭고, 이창호 바둑은 쳐다보기도 싫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상대를 질려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막상 스승을 앞섰지만 그저 기쁜 마음은 아니다. 유아인은 당혹감과 죄스러움이 뒤섞여 있는, 그러나 승리감에 잔잔히 스며든 복합적인 감정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스승의 기세에 눌려 있던 시절을 벗어나 전 국민이 지켜보는 스승과의 대국에서도 의연할 수 있게 된 변화가 눈에 띈다. 실제 이창호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말수가 유독 적은 성격으로 유명하다. 유아인은 이창호의 외적인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내적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김형주 감독이 마약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의 등장 분량을 손대지 않고 개봉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바둑을 잘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로서 승부수를 건 자신감은 두 배우의 연기력과 작품 짜임새에서 나왔다.
■영광의 ‘50년 역사’
1990년대 세계 호령 한국 ‘바둑계 황금기’
영화 ‘승부’가 다룬 조훈현·이창호 9단의 사제지간 맞대결은 1990년대 한국 바둑계의 황금기에 이뤄졌다. 걸출한 기사들의 등장으로, 한국 바둑이 세계 무대의 중심을 차지했던 때다.
조훈현에 앞서 개척기는 조남철·김인 9단 등이 이끌었다. ‘한국 바둑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남철은 1937년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의 내제자로 들어가 1941년 조선인 최초로 일본기원 프로 바둑기사가 됐다. 1960년대까지 20여 년간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구가하던 그 아성은 23세 청년 김인에 의해 무너졌다. 조남철과 마찬가지로 유학길에 올라 기타니에게 바둑을 배웠던 김인의 시대는 조훈현이 나타나기까지 10년간 공고했다.
조훈현은 1974년 첫 우승을 따낸 후 자신의 내제자 이창호에 의해 밀려난 1990년대 초까지 바둑계를 지배했다. 조훈현은 특히 1989년 9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응씨배 결승에서 승리함으로써 한국 바둑을 세계 중심에 세운 인물이다. 이창호는 스승의 뒤를 이어 서봉수·유창혁 등과 함께 세계 대회를 휩쓸었다. 조훈현과의 대결에서도 ‘완승’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창호 시대 또한 2000년대 등장한 이세돌에 의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조훈현과 닮은, 날카로운 바둑을 두는 이세돌은 20세에 이창호를 이기고 세계 무대까지 석권했다. 이세돌 9단 이후 인공지능(AI) 바둑의 등장으로 더욱 급격해진 세대 교체는 박정환 9단에 이어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에 이르고 있다. 최근의 바둑 애호가들은 AI의 추천 기보(棋譜)를 보며 바둑을 즐기고, 프로 바둑기사들도 AI 기사를 상대로 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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